이혼 후 소개팅에 임하는 자세, 1편
이혼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 딱쟁이가 질 때 즈음.
무언가에 집중 하기에 딱 좋은 환경과 마음가짐이라 지금이야말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단 생각을 하던 찰나 절친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소개팅 안 할래?"
"음 글쎄 별로 안 당기네. 나 요즘 이직에 꽂혀 있어서 말이야~ 다른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이번 기회에 꼭 성공적으로 이직을 해서 업계를 바꿔볼 거고 blah blah~"
"아 됐고. 언니는 지금 언니를 웃게 해 줄 남자를 만나야 해. 이 오빠 진짜 유머감각도 있고 재미있는 사람이라 언니를 웃게 해 줄 거니깐 일단 한번 만나봐."
한창 화려한 돌싱 라이프를 즐기기만 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직 준비한다고 집에만 처박혀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또는 그저 그녀의 부캐 활동의 (그녀의 부캐: 마담뚜) 일환으로 날 써먹겠단 건지 무엇이 그녀의 참된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웃게 해 줄 유머 있는 남자란 그에 대한 한 줄 평은 이혼과 함께 저 멀리 요단강으로 흘려보내 버린 지난날의 나의 연애 세포들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나는 웃긴 남자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음 코드가 맞는 남자'란 조건이 연애 상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 중에 하나인 것이다.
humor always works
유머는 항상 통한다.
인생을 살면서 유머를 적시적지에 잘 활용한다면 그 어떠한 불편한 상황도, 어려운 환경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나이기 때문에 삶의 모토도 humor always works.
물론 이를 잘못 받아들여 아무 때고 분위기 파악도 못한 채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는 실소리를 하란 것은 절대로 아니다.
유머감각을 삶의 윤활유로 활용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란 최소한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의 센스, 전후 좌우 상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능, 현장 내 그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시답잖은 일상을 공유하고 깊은 정서적 공감대가 필요한 연인 관계 내에서 웃음 코드가 맞는다라는 것은 훨씬 더 많은 디테일이 요구되어지는데,
그간 각자가 살아온 삶 동안에 차곡히 쌓아 빚어 만든 가치관, 도덕성 즉 삶의 방향성이 최소한 비슷한 곳을 향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같은 포인트에 웃을 수 있고 더 나아가 함께 분노하며 울거나 슬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이 소개팅남은 과연 나랑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을까...?
소개팅남 왈:
"저는 연애를 할 때 이 사람과 결혼을 할 수도 있겠단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시작합니다."
쎄오의 속마음:
'아... 이 진지충은 또 뭐지. 나에게 결혼은 한 번이면 족해. 그냥 가볍게 연애만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본인도 한번 실패해봤으면서 무슨 결혼을 또 한다는 것인지 쩝...'
아차차,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빠졌는데 이 소개팅남도 나와 같은 돌싱이란 사실.
이혼 절차가 시작되고 과정 중에 있을 때에는 혹여 나중에 연애를 하게 된다면 돌싱도 좋고 총각도 why not! 이란 생각이었지만 막상 공식적으로 이혼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후에는 왠지 내가 총각을 만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애초부터 결혼을 한 이력이 없는 남자라면 연애 가능성조차 열어두지 않았다.
** 돌싱과 초혼의 만남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뤄보기로 하자.
날짜조차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너무나 평범한 어느 일요일 오후.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80년대 빵집 데이트를 회상하듯 동네 빵집에서 이루어졌는데...
-2편 꼭 기다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