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야기
출산과 육아로 인한 퇴사로 전업주부의 삶을 산지도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다. 그 기간 동안 나의 대표 타이틀은 엄마와 전업주부, 그리고 부캐는 돈 못 버는 사장, 김쎄오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역대 가장 많은 역할을 소화... 아니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었다.
육아휴직은 안되고 대신 재택근무를 하게 해 주겠다는 회사의 제의를 끝내 수락하지 않은 건 나의 결정이었지만 이런 상황에 내몰린 것은 시스템의 문제 아니겠냐며 결국 이렇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상태를 자위해 오던 중, 지인으로부터 유명 외국계 브랜드 마케팅 팀장 자리에 지원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무슨 말이야. 비록 내가 지금 이렇다 할만한 수익은 없지만 나름 대표로서 내 사업을 잘 꾸려가고 있는데.'라며 단칼에 거절하는 나의 멋진 모습은 뒤로한 채,
"오… 그래서 거기 사무실 위치가 어디라고?"
[퇴사 전]
임신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회사에 바로 임신 사실을 알려 출산 후 내 업무의 지속 여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을만한 시간은 충분했고 때마침 불어닥친 팬데믹과 회사의 배려 속에서 나는 임신 기간 내 대부분의 시간을 재택근무를 하며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덧붙여지거나 일부 조정된 조건으로는, 출산 휴가 직후 바로 복귀를 하되 대신 업무량을 기존보다 줄이고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모유 수유 기간 동안은 재택근무를 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합리적인 조율이란 말인가!
그냥 육아 휴직 쓰면 되잖아요?
회사에서 선뜻 육아휴직을 인정해 주지 못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터라 이렇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데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냥 육아휴직을 일 년 정도 허락해 주면 될 것을... 이란 생각에 내심 속상한 마음도 양립했었다.
그렇게 출산 90일 만에 복직을 하게 되었고, 젖 달라고 우는 아이를 모른 체하며 꾸역꾸역 재택근무를 하긴 했지만 사실상 이 상태로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란 불가능하단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뜻 보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커리어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꽤나 괜찮은 상황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그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였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뚱이는 도저히 정신력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괴로운 마음으로 4개월을 버티다 결국 퇴사를 결정했고 이로써 나는 공식적으로 '기약 없는 경력 단절'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이로써 엄마, 전업주부, 돈 못버는 사장에 이어 타이틀이 하나 더 늘어났다.
이름하여 경.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