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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제인 Mar 23. 2021

[Mar:자유주제] 제주라는 위로

3박4일간의 제주여행기


공항은 설렘이다. 제주행 항공권을 끊고 채 3만 원이 되지 않는 돈으로 제주를 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기쁜 소비였다. 무작정 전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항공권을 검색하고 렌터카를 찾았다. 숙소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비행기모드를 하기 전 결제했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캐리어 없는 여행이었다. 단벌 신사에 세면도구 정도만 넣은 배낭을 메고 제주에서 간단히 쇼핑이나 할 요량이었다.



무작정이라는 말은 이렇게 쓰이는 것이다.


제주도착. 헬로제주라는 문구부터 나를 설레게 했다.



공항에서의 설렘을 뒤로한 채 도착한 제주는 따사롭고 아름다웠다. 여행 내내 맑기만 한 햇볕이 새삼 감사했다. 제주에 사는 친한 오빠는 날 만나러 와주었고, 때마침 신혼여행을 왔다는 모임 동생 부부도 함께 밥을 먹었다. 우연은 필연처럼 착 맞아 떨어졌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계획한 여행은 캐리어가 없는 데서부터 이미 완성됐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의 이유.


근 반 년간 이직을 세 번 했다. 이 문장만 놓고 봐서는 내가 변덕이 심해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를 핑계로 그놈의 코로나라는 명분이 내게는 가시처럼 캑캑거리게 만들었다. 임금을 못 받았거나 또는 무급휴가 혹은 문자로 통보받은 해고통지가 내게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실로 괜찮은 편이었던 나는 치명타 정도는 아니었는데, 충격도 쌓이다 보니 내게는 쉼표가 필요했다. 덤덤했던 나는 덤덤해야만 했고, 운동 삼아 하려던 일이 내 건강을 해쳤으며 도리어 몸은 급격히 불어났다.



하여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중 하나로 여행을 택한 것이다.









아르떼뮤지엄 : 들어가자마자 우와-하게 만드는,




두 번째 날엔 아르떼뮤지엄에 갔고 올레시장과 동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선물택배를 보냈다. 그리고 편한 옷을 걸치고 가벼운 라운지 펍. 즐거운 낯선 사람들과 시답잖은 얘기들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 느낌을 흠뻑 받았다. 낯선 사람과의 조우는 기분이 참 묘하였다. 다음 날에는 처음 보는 이와 동행해 올레길을 걷기도 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이들은 도민, 나는 곧 떠날 사람이라는 것이 나는 덜 아프게 느껴졌다. 이별은 떠나는 쪽이 더 낫다고 늘 생각해왔으니까.



나보다 어린 여자직원은 적응이 안 돼서 가는 비행기를 보며 울었던 적도 있다 했다. 좀 더 긴 여행으로 머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 더 즐거운 여행이란 걸 아니까.








벚꽃은 만개하기 전이었고, 내가 노란색을 좋아하는 걸 어찌 알았는지 유채꽃밭을 지나가면서.






마라톤 완주를 위해 매년 오던 제주는 작년부터 오지 못했다. 그놈의 코로나, 누가 자꾸 걸리고 있는 걸까. 내 주변엔 없는데. 단 4시간뿐이었을 나와의 동행에 낯선 동생은 제주에 온 지 2달 남짓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다음날 떠난다고 하니 기분이 아쉽다고 했다. 더 머물다 가라는 마음을 보면서 나는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마음이 조금은 소독되는 것만 같았다. 제주의 파도 소리는 잠잠해졌고, 마시던 논알콜 칵테일도 바닥을 드러냈다.








며칠이 지나고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 나 여기 놀러왔어요, 사장님 바꿔줄까요?"


내가 생각난 모양이다. 이런 작은 마음들만으로도 가치 있는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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