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생각법 351 -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감 갖기
겨울 파카를 꺼내 입었던 주말이 무색하게, 어제는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보이기 시작했다. 날씨처럼 사람의 마음도 하루 사이에 오르락내리락, 온도가 달라진다. 마음의 온도를 바꾸는 건 어쩌면 ‘툭’ 던진 한마디, 어쩌다 보고 들은 한 장면 일지 모른다.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혹은 차갑게 만들 수 있다.
오전엔 챗GPT에 삼겹살 사진을 넣고, 고급스러운 한국 스타일로 바꾸는 프롬프트를 연습했다. 손가락 크기로 썬 삼겹살이 불판 위에 나란히 놓이고, 와인잔과 수저 세트, 고급 식기, 사이드 반찬과 따뜻한 조명까지 곁들여진 모습. 그 사진을 보니 이상하게도 삼겹살이 먹고 싶어졌다. 결국 저녁엔 소금구이집에서 돼지고기 뒷고기를 시켜 먹었다. 가볍게 먹자며 나간 저녁이었지만, 배를 두드릴 만큼 쫀득한 고기로 배를 채우고 말았다. 정신 건강도, 신체 건강도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고기를 먹고 나니, 건강한 음식이 떠올랐다. 문득, 광진구의 손두부집이 생각났다. 광진구에 건너가면 항상 아차산 아래에 있는 할아버지 손두부 집이 생각난다. 우연히 검색하다 발견한 두부집인데, 등산객들로 대기를 할 정도로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식당이다. 손두부 한 모, 순두부 하나를 포장해 와서 집에서 먹는다. 막걸리 같은 술을 안 마시니 두부만 식당에서 먹고 나오는 것,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니 음식이 남을 것 같아서 주로 포장한다. 두부집을 간다고 하면, 남편은 '김피탕'을 떠올린다. 광진구에 있는 김치, 피자, 탕수육의 줄인 말이다. 두부와 김피탕이 세트가 되어 늘 함께 포장해 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광지구를 지나가기만 하면, 두부 - 김피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내 건강에 좋은 음식 먹으려다, 남편 건강은 나빠지는 것 같아, 선뜻 맛있는 두부를 먹자고 하기가 꺼려진다. 내가 꺼낸 한 마디에 대해 책임은 내가 진다.
어젯밤에도 어김없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뭐 하셨냐고 물었다. 오전에는 스마트폰을 배우고 왔다고. 집에 오니 오후 1시 30분이어서, 어딜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쌍문동 근처에 있는 연산군 묘에 다녀오셨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버스까지 갈아타고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했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보고, 집에 왔다고 하셨다. 저녁을 드셨냐고 하니, 언니와 언니 남자 친구가 같이 와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고 했다. 언니 남편, 형부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넘은 것 같다. 언니를 챙겨주는 언니 남자 친구는 언니와 함께 아빠집에 와서 자주 밥을 함께 먹는다. 꽃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화담숲, 광릉 수목원, 꽃 박람회 등에도 아빠를 모시고 다녀온다. 언니 집 근처에 아빠가 계셔서 언니가 늘 아빠를 챙겨준다. 데이트하기에도 바쁠 텐데 아빠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잘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를 챙기는 언니 모습에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아빠에게 여권을 만들라고 했었다. 아빠 여권이 생진지 한 달이 지났다. 깜빡하고 있었다. 아빠 모시고, 가까운 대만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생각하고는 잊고 있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중국 '황산'은 어떨까 생각 없이 물었다. 아빠는 많이 걸어야 하는 곳은 안 된다고 하셔서, 아차 싶다. 처음 생각했던 대만이 적당해 보인다. 스마트폰, 서예, 문인화 배우느라 바쁜 아빠의 스케줄이 언제 비는지 물어보니, 12월이 방학이라고 한다. 너무 늦다. 수업 빼먹고 가야겠다며 웃었다. 해외여행 이야기를 꺼내두었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여행 계획도 없이 아빠에게 왜 여권을 만들라고 했을까. 상대방에게 기대감을 심어 주기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빠의 설렘을 충족시켜 드리기 위해 여행지부터 결정을 해야겠다. 아빠의 기대감을 책임질 필요가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흘려듣고, 쓰윽 지나간 것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때가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 한마디, 행동하나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영향을 주었다.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이야기를 듣든, 어떤 모습을 보든 문제없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 뇌는 그걸 정보로 인식해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연산 작용에 의해 어떤 자극을 받는다. 그것과 연결된 정보에 신호를 주게 되고, 엉뚱한 반응이 나타난다. 슬쩍 내뱉은 말에도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법이다. 함부로 인풋 하면 안 된다. 그 인풋이 어떤 내부 작용으로 아웃풋 될지 모르니까.
올림픽 공원 산책하다가 앞에 가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뒤태가 치명적이다. 양쪽 엉덩이가 하트 모양으로 빵빵했고,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리듬에 맞춰 우아하게 모델 워킹하듯 걸어가는 모습에 남편과 나 모두 홀리고 말았다. 도도하게 한 발자국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강아지를 한 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을 생각하니 반려견에 대한 책임감이 떠올라, 아직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지나가는 강아지들만 바라보기로 했다.
자신의 행동은 누가 뭐래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복구하기 어렵다.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하게 걸어가는 강아지 모습처럼 세상에 당당해지려면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책임진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가족에게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하루의 설렘이 된다. 그 설렘의 무게를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책임감은, 어쩌면 당당함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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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 책 쓰기 코치 와이작가 이윤정
2900일+ 꾸준한 독서, 365독 글쓰기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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