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도 잘해낼 수 있다

383.『사람을 얻는 지혜』018 타고난 능력도 노력이 완성한다

by 와이작가 이윤정

세상에 잘 난 사람이 참 많다. 내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보다 체력도 약하고, 능력도 많이 부족하고, 성향도 오프라인에서는 매우 내향적인 성격을 가졌다. 모임에서는 앞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뒤에서 지원해 주는 그런 사람이다. 아주 평범한 시골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냇가에서 여름엔 수영하고, 겨울엔 썰매타고, 뒷산에 올라다니며, 논밭에서 메뚜기 잡아가면 할머니가 볶아주셨고, 토끼도 키우고, 쥐불놀이하면서 뛰어놀며 자랐다.


경상남도 산청군,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산 아래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보내다가, 3학년이 되면서 안동으로 전학했다. 영어학원은 6학년 2학기에 처음 가봤다. 영어가 참 어려웠다. 단어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대신 영어보다 산수, 수학을 좋아했다. 안동여자중학교 2학년, 운좋게 전교 1등을 했다. 수학 문제 하나가 어렵게 출제된 적이 있었는데, 전교에서 혼자만 맞췄다. 하지만, 안동여고 1학년 때 수술 후 휴학을 한 이후로는 체력도 성적도 받쳐주지 못했다. 쉬다 보니 전과 같지 않은 성적에 속상했다. 아니면, 날고 기는 아이들이 다 모인 고등학교여서 처음부터 성적이 그 정도였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이과와 불어반(이지만 학년 내에서 가장 우수한 애들만 모였다)이었다. 반에서 5~7등 사이에 머물렀다. 고등학교 초에는 한양대, 중앙대, 건국대 같은 곳에 약학과로 지원학교를 생각했지만, 점점 학교레벨을 낮추어야 했다. 모의고사 성적도 좀 낮게 나왔다. 성적이 중학생 전성기 같지 않았다.


1997년 대학수능 시험은 어렵게 출제된 해였다. 다음날 신문 배달을 받았다. 신문에 답이 나와있었다. 모의고사 성적보다 낮게 나왔다. 성적에 따라 미래를 바꾸어야만 했다. 요즘 같으면, '재수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을 텐데, 당시에는 주어진 성적으로 입학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재수하며 다시 공부만 할 체력이 안 된다고 판단했었다. 침대 위에서 예상 점수를 매겨보고 울적해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처음은 이과도 아닌 가군으로 안동대학교 영어영문과에 원서를 넣었다. 집이랑 가깝다는 이유와 아빠가 영어가 어디서는 필요하니 영어 선생님하면 된다고 추천했던 곳이다. 보험처럼 일단 접수했다.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리고, 나군으로 아주대 생명공학과에 원서를 썼고, 후보로 합격했다. 다군으로 SSU 정보통신전기전자공학부에 넣었다. 후보 7차 만에 겨우 문을 닫고 입학했다. 학부생으로 뽑았다. 한 반에 50~60명 정도로 기억한다. 3반이 있었다. 그러니 학부에서는 거의 꼴찌 근처로 입학한 게 아닐까 한다.


대학교 1학년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당구장이며, 술 마시고,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대학교 1학년이니까 자유를 찾아다녔을 것 같다. 난 내향적이라 친구도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도 1학년 휴학하고 입학한 터라 동기생들에 비해서는 어찌 보면 재수생 누나, 언니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맘이 더 쪼그라들었던 듯하다. 수업을 마치면 곧장 집에 갔다. 고등학교 휴학 중에 배웠던 컴퓨터 사무화 과정으로 정보처리기능사 2급,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을 땄었다. 아래 한글 프로그램으로 대학교 전공 서적에 나오는 미적분학, 공업수학, 미적분학 수학 공식을 한글에 입력해서 요점 노트를 만들었다. 작게 출력해서 투명 시트지로 코팅까지 해서 소책자로 만들었다. 아직도 버리지 않고 갖고 있는 잇템이다. 고등학교에 나온 수학문제랑 별다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놀 때, 그냥 나는 평소처럼 했지만, 아이들이 놀다보니 성적에 차이가 났다. 1학년 1학기 성적이 4.5점 만점에 4.1점을 받았다. 성적장학생이 되었다. 꼴찌로 들어갔지만 남들처럼 노는 대신 수학공식 정리하면서 보냈던 대학생활에서는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다. 대학생 때는 조금만 정신차리면 성적이 잘 나온다. 남들 놀 때 조금만 공부를 챙기면 두드러진다. 놓치지 말자.


*공과 대학생을 위한 공식 라플라스 변환 수학공식이다. 묻어두기 아까워서 공유해본다.A4에 4페이지씩 출력하면 가지고 다니기 좋도록 만들어둔 파일이다.


대학원을 선정할 때 고민했다. 친구들과 대학원 진학을 하기로 정했는데. 영어 실력이 별로 없었다. 타대학 SKY에 진학하려면 영어 시험이 필요했다. 준비를 안 했으니 원서조차 써보지 않았다. 안 될 거라 생각했다. 대학원은 동대학원에 진학했다. 지도교수님의 얘기에 설득당했다. 학교보다 논문 수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었다. 묘하게 설득당했다. 그렇게 지도교수님을 믿고 논문을 많이 쓸 수 있는 통신 이론 및 신호처리 연구실로 정했다. 잘하진 못해도 수학을 좋아했으니 성격에도 맞았다. 영어 논문을 받아 들고 세미나를 하라는데 막막했다. 영어는 늘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러던 내가 영어 논문을 쓰는 날이 왔다. 일단 한글로 쓰면서 영작을 하긴 했지만, 처음 영어 논문을 쓰고 나서 '이걸 내가 써내다니!'라는 감격이 몰려왔다. 그렇게 외국 학회에 가서 외국인들 앞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혼자 얼마나 나 자신이 대견했던지 모른다.


박사 졸업 후 한 번만에 취업했다. 연구소에는 SKY, 카이스트 출신이 많은 편이었다. 다행히 SSU 전산과 출신 선배들이 있어서 뭔가 여기서도 버텨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했다. 서울대, 연대, 고대, 카이스트에 가지 않아도 나도 연구소에 입사를 했으니, 결국 어떤 대학이라도 노력과 미네르바가( 아테나의 라틴식 이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으로 선천적이고, 도덕적인 능력이나 자질, 지혜, 지식을 의미)가 있다면 동일한 상태가 된다고 느끼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장학생이 된 것처럼 남다른 학벌에 상관없이 나의 노력은 직장에서도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직 좋은 대학에 나온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마흔이 되면서 노후에 관심을 돌리면서, 독서, 글쓰기, 재테크에 관심을 가졌고, 경제적 독립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을 진짜 하면서 살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지금은 작가와 라이팅코치로 활동 중이다. 독서와 글쓰기도 0에서 1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마흔 부터 시작되었다. 아직 나는 세상에 많이 알려진 존재가 아닌 초보자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그리고 나를 믿는다. 조금씩 쌓아가는 나의 노력이 언젠가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오늘도 조금씩 한 줄, 두 줄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3년, 5년, 10년 후에는 탁월해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능력을 타고나진 않아도, 평범한 사람도 노력과 끈기로 해낼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는 게 나의 꿈이다. 내가 해보니 되더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꼼수 부리지 않고 기본을 지켜나간다. 누구나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걸 글로, 책으로 남겨놓을 예정이다.


"노력과 미네르바"- 『사람을 얻는 지혜』발타자르 그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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