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안 좋아, 건강에 안 좋아

389.『사람을 얻는 지혜』024 미친 상상력을 제어하는 분별력을 지녀라

by 와이작가 이윤정

오전 볼 일을 마치고 일산 킨텍스 전시장에 남편을 태워주러 다녀왔다. 남편 혼자 들여보내고 배가 고파서 현대 백화점에 가서 간단히 배를 채우려고 했다. 화장실이 급해서 갔다가 돌아오니 참새 방앗간 앞을 지나게 되었다. 헬스장에 남편과 함께 5일 연속으로 가면, 드라이핏 T 셔츠를 하나 사기로 다짐했다. 어제까지 이틀 연속 다니다가, 남편이 하루 빠졌다. 남편도 헬스에 동참하게 만들려고 그런 선언을 했었다. 남편은 그냥 자기가 사주겠다고 한다. 안 된다고 했다. 나흘 연속으로 혼자라도 다녀왔다. 나 혼자라도 5일 가면 사야지 마음먹었다. 하루만 더 가면 살 수 있다. 하지만 할인 중인 티 셔츠를 보고는 사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29000원 반팔 티셔츠를 결국 샀다. 상상 속으로 오늘까지 헬스장에 다녀온 느낌이 들었다. 다 봤다고 태우러 오라고 한다. 3시까지 잠실로 가야 해서 김밥 두 줄을 샀다. 차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머릿속으로는 다른 메뉴를 보았지만, 내 입은 2번 계란이라는 말을 했다. 딴생각을 해버렸다. 상상하지 못한 맛이었다. 김밥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촉촉한 크림 케이크를 입에 넣은 듯하다.


아침 11시에 임대차 계약, 한 시간 이십 분 걸려서 일산 킨텍스에 다녀와, 잠실 교보문고 사인회 들려서 뒤풀이에도 참석했다가 5시 조금 넘어 나왔다. 남편 저녁이 걱정돼 전화했더니 쉑쉑버거 하나 사달라고 한다. 마트에서 순두부, 딸기, 훈제 오리를 사서 쉑 스택하나 포장해 집으로 도착했다. 씻고 나서, 남편은 햄버거를 먹고, 나는 사인회에서 받은 떡을 반쯤 뜯어먹다가 오늘 사 온 딸기를 씻어 먹었다. 저녁 7시다. 책 읽어야지 싶었는데, 눈에 안 들어올 것 같다. 결국 잠이 들었다. 남편에게 9시에는 깨워달라고 하고 침대로 갔다. 두 차례나 깨우러 왔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밤 9시 30분이다. 소파에 앉으니 9시 58분이다.


갑자기 날이 선선 해져서 그런지 목이 다시 간질거린다. 남편이 튀김 우동 컵라면을 하나 끓여 먹겠다고 한다. 목도 살짝 아프니 뜨거운 게 먹고 싶다고. 라면을 다 먹은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와, 오늘 튀김우동 너무 맛있다. 마치 스위스 융프라우에 가면 신라면을 먹는 맛이랄까? 지금 이 라면 먹으면서 그 상상이 들정도로 맛있어. 난 매콤한 거 안 좋아해서 이게 딱 좋네."


스위스에 있는 융프라우 산에 올라가면, 휴게소 하나가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의 신라면을 하나 맛볼 수 있다. 문 밖에는 눈이 뒤덮인 산들이 펼쳐져 있다. 귀도 먹먹하고, 고산병처럼 어질어질하다. 거기서 맛보는 신라면은 한국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남편은 스위스에 가본 적 없지만, 튀김 우동 하나에 그런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 소리를 듣고서 라면이 먹고 싶었지만, 한 시간 반을 버티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하나 먹을까?"

"그럼, 안 좋아, 건강에 안 좋아."


소파에서 <달과 6펜스>를 읽다가 싱크대 앞에 서있던 남편을 쳐다보았다.

"참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에 안 좋아. 먹어. 물 끓인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밤 11시 30분, 빵 터졌다. 남편이 물을 끓인다. 작은 신라면 하나에 물도 부어준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3분 타이머를 맞췄다. 라면을 한 젓가락 먹었다. 매콤하고, 뜨겁지만, 남편이 느꼈던 융프라우의 맛을 나도 맛본다. 내 경우는 라면을 끓이면 라면 면만 건져먹는 습관이 있다. 국물은 안 먹는다. 몇 젓가락 만에 면을 다 먹었다. 남편이 따라 놓은 뜨거운 맹물을 마셨다. 식탁 옆에 읽고 있던 책 <달과 6펜스>를 펼쳤다. 몇 페이지 읽다 보니, 남겨둔 라면 국물이 보인다. 한 모금 마셨다. 짜릿하다. 책 몇 페이지 읽다가 국물 한 모금을 또 마셨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용기 바닥이 보인다. 남아 있던 건더기가 몇 개 보인다. 젓가락으로 쓱쓱 긁어 입안에 톡 털어 넣었다. '어? 나 국물까지 다 먹었네? 내일 아침에 얼굴 붓겠지?' 그럼에도 맛있다는 상상을 한다.


남편의 상상력에 나의 뇌가 홀라당 넘어갔다. 나는 컵 라면보다 끓인 라면을 좋아했다. 컵라면 하나로 미친 상상력을 한 남편 덕분에 오늘 또 웃었다. 부부의 일상에 행복을 만나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꿀팁 1. 상대와 같이 웃자. 그냥 내가 웃어주면 허물도 사라진다.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쿨하게 웃고 넘기면 그게 평화다.


꿀팁2. 야식 욕망이 몰려 올 땐, 3분만 미뤄보자. 타이머를 맞추고 3분 뒤에 생각해보자. 짧은 시간에 결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상상력을 쉬게하고, 그럼에도 참을 수 없다면, 먹자. 건강에 안 좋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중에 하나를 선택하자.


꿀팁3. 음식 하나에도 이야기가 숨어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컵라면을 스위스 융프라우의 맛처럼 느끼게 하자.


상상은 어디에서든 시작된다. 김밥 한 입, 라면 한 젓가락, 백화점에서 눈에 띈 티셔츠 하나. 오늘 나는 다녀오지도 않은 융프라우에 잠시 다녀왔고, 헬스 다섯 번째 날을 채우지도 않았지만, 이미 다녀온 것 같은 만족감을 느꼈다. 남편의 한마디, 친구의 사진, 스쳐 지나간 냄새 하나에도 우리의 상상력은 불쑥 솟구친다. 그 상상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더 유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오늘 하루는 유쾌했다. 누군가의 상상력에 웃으며 동참한 날, 몸은 흰 죽같이 퍼졌어도, 하루는 맛있었다. 상상력은 조미료다. 조금만 넣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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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다스리라." -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024 미친 상상력을 제어하는 분별력을 지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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