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

246 변명은 의심을 일깨울 뿐이다.

by 와이작가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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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들여다보았다. 댓글에 누군가 자신을 비방하는 글이라며 캡쳐를 해서 다시 자신의 콘텐츠로 업로드한 내용이었다. OOO대 MBA 석사라고 경력을 적었더니, 학부는 그렇고 그런 대학이 아니냐는 댓글이었다. 물론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비난하는 글은 나쁘다. 댓글에 여러명이 글쓴이를 옹호하고, 댓글을 단 사람을 비난하는 글이 다시 올라온다.


배우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프로필을 보면 Y대, K대의 경우에는 학교명을 적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고. 나는 굳이 묻지 않은 학교 정보는 굳이 밝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주눅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굳이 언급해서 입에 오르내릴 필요는 없으니까.


오늘은 대구에 있는 시댁에 내려왔다. 시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있어서다. 지난 번 시댁에 다녀온 배우자가 팁을 건네 준다. 이번에는 아이패드를 사드릴지, 호텍 점심 식사를 대접할 지 고민하던 차였다. 배우자가 잠시 어머니를 살펴보니, 갤럭시 워치 8을 갖고 싶어하는 눈치라고 했다. 내가 사드리고 싶은 것보다, 당사자가 갖고 싶은 걸 사주는 게 선물의 힘이라는 걸 알기에, 내가 드리고 싶은 걸 포기하고, 갤럭시 워치8을 구매해 두었다.


어머님께 갤럭시 워치 8을 건넸더니, "어머나, 갤럭시 워치 8이야?!" 하시면서 입이 귀에 걸리셨다. 당장 차고 있던 갤럭시 워치7을 빼버리고, 워치 8을 껴보신다. 어머님이 좋아하는 보라색 줄도 미리 구매해서 함께 가져왔더니, 시계 줄도 예쁘다고 한다. 핸드폰이랑 연결 시켜드렸다. 항산화지수도 측정할 수 있고, 수면 관리 등 여러 기능이 있다며 이것 저것 눌러 보셨다. 어머님께 어떻게 그런 기능이 있는 줄 다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님이 깔깔깔 웃으신다.


남편이 알려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머님이 쓰던 갤럭시 워치 7은 아버님께 차고 다니라고 하시면서, 시계 줄도 건네 주신다. 이번에 어머님용 시계 줄이 기본 흰색에 검정색과 보라색을 사은품과 하나 더 구매했었는데, 검정색을 아버님 드리면 되겠다고 하니 주기 싫은 표정처럼 느껴졌다. 시계줄 연동이 안되는 걸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이는 듯 보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옛날 시계줄을 꺼내 아버님걸로 설정해 드렸다. 어머님 시계 화면은 보라색 꽃으로 해드렸다. 손목을 움직일 때 마다 꽃이 보이니 어머님도 슬쩍 슬쩍 한 번씩 쳐다보는 모습이다. 저녁을 챙겨 주신다. 여느 때보다 더 음식을 듬뿍 담아 주신 것 같았다.


어머님 생신은 음력 생일인데, 주민등록 날짜와 하루 차이가 난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걸 매번 놓친다. 핸드폰에 표시해 두었지만, 어떤 게 맞는 지 매번 틀렸다. 이번에도 하루 앞 당겨 오게 되었는데, 굳이 미리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침 일요일이 껴 있다. 일요일은 교회가시느라 바쁘시니까, 토요일날 가족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저녁에 올라 가기로 했다. 날짜를 틀리긴 했지만, 잊어버렸다고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변명은 의심을 키운다고 한다. 누군가 잘못을 지적할 때는 변명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리고, 실수나 잘못은 인정하는 것이 사람을 얻는 지혜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변명을 하는 순간 오히려 화를 북돋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도 변명하다보면 일이 더 커지는 경우가 생긴다.


MBA 학위를 자랑하고 싶었던 그 사람도, 학부 학벌을 지적한 댓글러도, 다친 손가락을 들이민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우리는 관계의 여백을 잃는 경우가 많다. 시어머니께서 워치 8을 차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만들어 준 오늘 저녁. 이런 게 진짜 사람을 얻는 지혜가 아닐까 한다.



『사람을 얻는 지혜』 246 변명은 의심을 일깨울 뿐이다.

"요구하지 않은 한, 절대 스스로 변명하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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