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선데이, 앨리 컬버트슨, 잭 뎀프시

평단지기독서 2493일, 《데일카네기 인생경영론》, 16일차

by 와이작가 이윤정

240208 쓰는 과정을 즐겼다. 읽는 과정을 즐겼다.

Oh, Yes! 오늘 성공!

/ 활력 넘쳤다! /감사합니다!

10년 먼저 은퇴 준비하는

4050 직장인을 위해

독서와 글쓰기 노하우를 전달하는

슈퍼 울트라 마스터 스테디셀러 작가

이윤정 라이팅코치입니다.


"무엇을 소유하는 것보다 무엇을 추구할 때 인생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잭 뎀프시


《데일 카네기 인생경영론》, 데일 카네기, 현대지성 23.12




5장 성실이라는 기본기

누구에게나 한번쯤 변신의 기회는 찾아온다 -빌리 선데이

William Ashley Sunday https://en.wikipedia.org/wiki/Billy_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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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애슐리 선데이(, 1862년 11월 19일 ~ 1935년 11월 6일)는 미국의 야구 선수였지만, 20세기 초반 2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전도사가 되었다.


"저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말을 합니다. '했어'라고 말해야 할 과거형에다 '하고 있어'라고 현재형으로 말하고, '봐서 처리했어'라고 현재분사형으로 말해야 할 때 '봤어'라고 과거형으로 말하곤 합니다."


야구 선수로 매달 1백 파운드의 봉급을 포기하고 YMCA에서 16-17파운드 봉급을 받으며 일했다. 빌리 선데이가 1917년 뉴욕에 오기 전 부터 그에 대비해 2만 번의 기도 모임이 열렸고,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건물 예배소가 지어질 예정이었고, 4백 명의 일꾼이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성가대석만 2천 개의 의자가 놓였고 2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7백명씨기 교대로 신자들에게 좌석을 안내할 정도로 인기있는 전도사였다.뉴욕에서만 125만명에게 설교했고, 거의 10만명의 죄인이 설교단으로 나와 참회했다.


빌리 선데이는 학교 수위, 장의사 보조, 프로 야구 선수, 목사 등의 삶을 살았는데 가장 의미 있는 변신이 목사가 된 것이다. 설교단 위에서 몸을 날려 야구 선수가 홈 베이스로 슬라이딩하는 모습을 흉내내기도 했다. 워낙 활기차게 설교하는 터라 늘 트레이너를 대동하고 다닐 정도로 체력 관리가 필수였다.


빌리 선데이는 돈 보다 종교적 믿음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마흔을 앞두고 중년의 위기를 어떻게 맞이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듯 하다. 나 또한 마흔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었다. 내가 기대하던 삶이 아니란 걸 그 나이 정도에 알게 되었다. 인생이 이게 전부였나 싶을 때, 새로운 길이 얼마든지 있다. 내가 알지 못하던 다른 세상이 있으니, 걱정없이 도전해도 괜찮다. 새로운 일도 신나게 잘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자!



행운이라는 변수를 인생에 끌어들이는 법- 앨리 컬버트슨

Elie Almon Culbertson, https://en.wikipedia.org/wiki/Ely_Culbert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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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컬버트슨(1891년 7월 22일 ~ 1955년 12월 27일) 1930년대에 지배적이었던 미국의 콘트랙트 브리지 게임 사업가


아버지의 재산이 소련 정부에 몰수되었다. 엘리 컬버트슨은 도박판에서 결투를 하게 되었다. 싸우는 동안 전재산 1파운드가 2천 파운드라는 기하급수적인 금액에 도달하고 있었다. 한 번만 돈을 딴 게 아니라 계속 돈을 벌었다. 번 돈으로 아버지가 빼앗긴 1백만 파운드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콘트랙트 브리지게임 사업을 통해 매년 몇 십만 파운드 혹은 매주 2천 파운드를 벌었으나 돈은 팬들에게 대답하는 비용으로 쓰는 게 많았다.


1922년에는 철학이나 사회학 교수를 얻으려고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었다. 석탄을 팔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커피를 팔아보려고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1910년 미국에 왔지만,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어까지 구사했지만 영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해 예일대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결국 캐나다까지 흘러갔다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조직했다가 회사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실패를 거듭한 삶을 살았던 엘리 컬버트슨에게는 행운이 따랐네요. 투자단계에서 돈을 몇 배 벌기 위해서는 멘탈관리가 필요합니다. 1파운드가 2000파운드가 될 때까지 그 앞에서 보고 있었다면 그만큼 벌지 못했을 거에요. 싸우는 동안 신경쓰지 않아서 기하급수적인 금액을 벌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 실패한 상태라면, 이젠 좋아질 일만 남은 겁니다!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늦다 - 잭 뎀프시

Jack Dempsey https://en.wikipedia.org/wiki/Jack_Demp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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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리슨 "잭" 뎀프시(1895년 6월 24일 ~ 1983년 5월 31일)는 키드 블래키와 마나사 뮬러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의 프로 권투 선수로 1914년부터 1927년까지 활동했으며 1919년부터 1926년까지 세계 헤비급 챔피언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후 그는 '무엇을 소유하는 것보다 무엇을 추구할 때 인생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챔피언이 된 날 뎀프시의 삶은 갑자기 통째로 바뀌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빠르게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 신문사 잡지사 인터뷰 요청이 빗발쳤고, 무대에서 강연을 했고, 특허 의약품을 홍보했고, 자선 단체를 위한 모금 행사을 도왔다. 헐리우드는 그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들이 하도 따라다니며 괴롭혀 잭 뎀프시는 편히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버킹검 궁전의 초대를 받았지만 몸이 아프다고 거부한 적도 있다. 갑자기 상승된 신분에 대한 혼란 등으로 몸에 병이 났었다.


"상황을 판단하려고 멈추어야 한다면, 그건 너무 늦는 겁니다. 나는 경기가 끝난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려고 신문을 읽곤 했어요. 상대를 녹다운시켰어도 내가 무슨 공격으로 그를쓰러뜨렸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때는 심판이 카운트를 세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상대가 바닥에 쓰러졌다는 것도 몰랐죠."


잭 뎀프시의 집중력과 자동 반사 신경덕분에 헤비급 챔피언 권투 선수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승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로또 복권에 당첨되듯 부자가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잭 뎀프시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이 아플 정도였다. 자수 성가한 사람들과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된 사람들 사이엔 삶의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책을 써서 갑작스럽게 신분 상승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다음 책을 쓰는 건, 바로 챔피언 한 번 달성하려는 게 아니라 그 쓰는 하루를 즐기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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