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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Mar 17. 2018

다시 고3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어느 고3 담임의 일기

첫 만남

  고3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전까지도 겨울방학을 신나게 즐겼을 아이들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야자를 하고 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앞으로 한 시간 더 아이들은 야자를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7시20분부터 4시간여 야자를 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분명 다르다. 강제로 모두가 남아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대학에 대한 압박감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지금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우고, EBS교재를 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매일 아이들과 나의 삶을 기록하려 한다. 아이들이 말했듯 ‘인생에서 다시없을, 정말 힘들지만 보람찰 고3’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개학을 했다. 이름 앞에 고3이라는 무거운 수식을 얻게 된 아이들은 긴장해보였다. 내가 맡은 3학년 문과 아이들은 유독 조용하고 반응이 없다. 밀레니엄 베이비붐 세대라 해서 한반에 38~9명씩이나 되는데, 이 많은 아이들이 교실을 꽉 채우고, 그만큼의 침묵과 정적은 무겁게 공기를 짓누른다. 앞에 서서 고3 생활을 오리엔테이션 하는데, 아이들이 입은 닫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 그 숱한 눈들이 나를 보고 있다. 교직 7년차, 고3만 4년째. 이제 그 눈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아이들은 고3이 처음이고, 설렘과 기대,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삶의 여러 모습들이 그러하듯이 정반대의 단어들이 함께 손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침묵을 깨뜨린다. ‘나도 긴장했고, 너희가 처음이지만 너희가 믿을만한 선생님으로 보이고 싶단다’라고 생각한다.


  주말이 지나고 오늘은 첫날이다. 우리반 38명의 아이들.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고, 이름과 얼굴을 맞혀내기도 만만치 않다. 곧 저절로 외워질 이름과 얼굴들이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한시라도 빨리 부르고 싶어 계속해서 들여다봤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관계는 시작된다. 밤하늘의 별은 바라볼수록 반짝이듯이 아이들도 이름을 부르고 관심을 가질수록 스스로 빛을 낸다. 아이들이 주말동안 써온 자기소개를 읽고 또 읽었다. 고3이다보니 지원대학과 학과, 성적을 우선 보게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 꿈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하나같이 높은 자존감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기를 원하는 아이, 항공 승무원을 꿈꾸는 아이, 가수가 되고 싶은 아이, 성악을 하는 아이, 미술을 전공하는 아이, 초등교사를 꿈꾸는 아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기도 많았다. 아이들을 별에 비유하는건 슬프게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썩 괜찮은 것 같다.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들도 많았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2년간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에게 고백하듯 겨우 말을 꺼낸 외에는 학교에서 굳이 선생님에게 밝히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 사실이 부끄러웠고, 나의 상처투성이인 유년시절을 밝히는 건, 술을 많이 마시고 친한 친구에게만 울음 사이로 토하듯 말할 때뿐이었다. 지금은 그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던 나 자신과 그런 성격을 형성시킨 학교와 사회가 부끄럽다. 아이들 또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말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경제적 지원을 받는 건 너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을 한다. 너의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힘든 건 사회의 탓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가 그것을 보상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며 그것을 우리는 ‘복지’라 한다고 말한다.


  학교나 고3담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 미래를 보장 하지만 인생에서의 가장 예민한 시기, 자신의 삶을 통렬하게 통찰해볼 수 있는 시기, 다시없을 가상한 노력을 경험하는 그런 시기에 그를 아낌없이 응원하는 어른으로 존재하고 싶다. 아이들이 이 고단한 마라톤에서 넘어졌을 때 손을 잡아주겠다. 그리고 마라톤이 그러하듯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너와의 약속을 지켰으면 된다고, 무사히 어른이 되어주어 정말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대보름도 지난 3월이다. 저 달이 기울면 그 틈으로 봄이 기웃거릴 것이다. 아이들은 봄을 창밖으로만 보겠지만, 창문을 열어주겠다. 꽃향기더러 어서 오라고, 여기 꽃봉오리들을 안아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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