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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Mar 17. 2018

아침 8시 그리고 밤 11시

어느 고3 담임의 일기

하루

아침 8시에 학교에 와서 밤 11시까지 있다 보면 하루가 정말정말 길게 느껴진다. 오전에 있었던 일은 마치 엊그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이틀밖에 안됐지만 이주일은 지난 듯 아이들과 낯을 익혔고, 우리반 아이들은 거의 다 이름을 익혔다. 첫날 써온 자기소개를 계속 해서 읽고 있다. 이름과 얼굴을 익히고 다시 보니 또 새롭게 보인다. 어서 빨리 상담을 하고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전의 아이들이 그러했듯, 지금의 아이들도 나를 꽤 믿을만한 어른으로 생각해줄 것이다. 아이들의 인생을 응원해주고 잘해왔다고 앞으로 함께 잘 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우선은 2주간 담임이 11시까지 야자감독을 한다. 그 후에야 상담은 시작될 것이다. 물론 야간에 말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 8시쯤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오늘 하루 해야할 일들을 주섬주섬 정리한다. 8시 20분 종이 울리면 나는 우리 반에 조회를 들어간다. 지각생을 체크하고, 여러 알림 사항들을 전달한다. 아이들은 군말 없이 휴대폰을 다 내고 조용히 앉아있다. 8시 30분 1교시 종이 울린다. 해질 때까지 계속되는 수업의 시작이다. 오늘 우리반은 화법과 작문, 한국지리, 미분과 적분, 심화영어, 생활과 운리, 한국사 등을 배웠다. 50분 수업과 찰나의 10분 쉬는 시간이 지나면 12시 20분에 점심시간이 된다. 대낮은 완연한 봄 날씨다. 아직은 미세먼지도 없이 하늘이 파랗다. 아이들이 3학년이라 좋은 건 급식을 1,2학년보다 먼저 먹는다는 점, 아마 그 뿐일 것이다. 돈까스와 청국장, 돈나물 정도로 구성된 맛없는 급식을 먹고 나오면 5교시까지 30분정도가 남는다. 가장 활기차고 가장 나른한 시간이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공을 찬다. 작년에는 고3 아이들을 데리고 점심, 저녁시간에도 교실에서 자습을 시켰다. 아이들이 원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그건 미친 짓이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영국출신 원어민 W는 고3의 일정을 이야기해주자 ‘Crazy, unbelievable’을 외쳐댄다. 전날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채 오전을 보내면 벌써 지치고 만다. 옆 반 선생님은 너무 힘이 들어 점심도 먹지 못했는데, 학부모가 갑자기 찾아와 한시간 넘게 상담을 해야만 했다. 오후 수업 7교시까지 마치면 오후 4시 10분이다. 사실 여기까지가 우리나라의 정규교육이다. 아이들의 3분의 1정도는 집에 간다. 그 친구들은 학원을 가거나 예체능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사실 아직 꿈을 찾지 못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아이들이다. 학교의 연구부장은 아이들을 학교에 더 잡아두라고,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이 아이들의 보충수업과 야자 참여율을 높인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 야자가 적은 반은 담임교사의 애정이 적어서 그런거구나. 여전히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방과후 수업이 끝나면 6시 20분. 해가 꽤 길어져 노을이 보일 즈음이다. 또 저녁을 먹는다. 점심보다 맛이 없다. 아이들은 종종 편의점 음식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아이들은 '살아있다.'  쉬는 시간은 월급처럼 잠시 들렀다 미련없이 떠나가고 해가 완전히 넘어간 7시 15분이 되면 예비종이 울린다. 아이들은 부랴부랴 양치질을 하고 사물함에서 책들을 꺼내온다. 7시 20분 야자 시작종. 9시에 종이 다시 울릴 때까지 우리는 책을 들여다본다. 몇은 졸고 몇은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10분여의 쉬는시간이 끝나면 9시 10분부터 11시까지 다시 야자. 중간중간 학원이나 과외 또는 버스 시간으로 아이들이 돌아가고 11시까지 남는 아이들은 7~8명 정도가 된다. 나는 아이들 앞에 앉아 교재연구를 하고, 책을 읽고 이렇게 일기를 쓴다.

 ‘하루’는 우리의 삶을 갈갈이 나누어 ‘종소리’로 지배한다. 알고 있다. 군대나 감옥과 비슷한 생활이라는걸. 아니 그보다 더 가혹한 환경이라는걸. 꿈을 위해서라고 자위하면 정말 위로가 될까. 사실 나는 아이들이 슬프고 점차 성적과 야자출석률을 강조하는 내가 두렵다. 고3 담임은 과연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인가 끊임없이 자문한다. 나는 이 말도 안되는 입시지옥의 잠재적 가해자는 아닌가 미안해진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말이라도 건네려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지나자마자 내일이 오고 있다. 그 틈새로 나는 얼핏 봄을 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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