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3 담임의 일기
어느덧 야자 2주째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고3을 2년 연속하니 두 번째 보는 영화는 더 전개가 빠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나의 시간도 더 빠르게 흐르는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생애 처음일 고3.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어 대견하다. 아이들은 ‘천사’란 비유가 무색할 정도로 착하다. 조용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친해지면서 아이들도 내게 진심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과의 상담은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상담’이란 근본적을 ‘고민’을 전제로 하기에 그 고민들을 듣고 공감하는 것은 사실 스트레스를 전달받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한 보람이 또 없다. 아이들은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집안 사정을 숨김 없이 이야기하고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고, 진로와 미래에 대한 막연함을 이야기하다가 스스로 길을 찾아내기도 한다. 나는 고3 담임. 아이들의 2학년까지의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며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가기 위한 컨설팅을 한다. 대부분은 1학기까지의 내신을 올리고,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비하여 봉사활동과 독서기록을 소홀히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아이들 개개인은 덩어리로 퉁칠 수 없는 살아온 인생들이 있다. 정현종의 시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까지 오는 것일게다.
지난 하루는 아이들과 상담을 하고 가슴에 울음이 가득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서 혼자 캔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먼저 상담했는데, 그 지난한 삶들을 겪어내온 그들이 너무나 가련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동등한 인격을 지닌 존재에게 함부로 연민을 품지 않도록 늘 경계하지만 나의 아이들이 마음 아프게 자라왔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이 나의 가슴을 찌른다. 사실 나의 상처를 투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독히도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아간 어찌보면 뻔한 스토리지만 그때의 숨 막히게 깜깜했던 나날들은 나를 평생 인정에 목마르게 만들었고, 남들 눈치를 살피며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부정하고 발버둥치려해도 어쩔 수 없는 가정으로부터의 상처들을 이해한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같이 눈물 흘리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이 그 상처 때문에 많이 아파하지 않고 서서히 치유하고 이겨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게 나의 진심은 아이들의 진심과 만나고 있다. 진심들이 마침내 손 맞잡으면 우리는 수줍게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나는 어느새 이 아이들을, 아니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2018.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