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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Mar 23. 2018

토요일도 자습하는 고3 아이들에게

창 밖에 봄빛이 속살거려

금요일

금요일이라 졸업한 아이들이 대학 강의를 마치고 많이들 찾아왔다. 3학년 담임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다.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퀭한 얼굴로 교무실을 들어오던 녀석들이 젊음을 한껏 꾸민 채 웃으며 찾아온다. 개화(開花)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암기(暗期)가 있다고 한다. 태양빛이 꽃을 피우리라는 통념에 어긋나는 것이다. 고3이 우리 인생의 암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꽃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삶의 어둠은 꽃봉오리가 치열하게 피어나려는 시간들임에 틀림없다.



토요일

얘들아 오늘은 토요일, 우리는 어느새 3월의 중간에 와 있어. 올해 따라 우리는 봄을 마중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는데 고맙게도 봄은 지금 너희의 창 밖에서 기웃거리는구나. 이 햇살 좋은 주말에 너희는 이렇게 학교에 나와 문제집을 풀고 있구나. 나는 산수유 같은 너희들 앞에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쓴다. 고3은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 미래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거쳐 현재의 삶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지지.

나는 어렸을 적 ‘푸른 아침 상념’과 같은 단어들을 참 좋아했는데, 너희는 이 새파란 아침에 문제만 풀고 있구나. 하늘을 올려 봐야 하는데 책상만 바라보고 있구나. 이런 현실을 겪게 해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언제나 고3 담임을 하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사실은 아직도 대입을 이유로 공부를 강조하는 나의 모습과 시를 읽고 노래를 듣고 주말에는 늦잠도 좀 자면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가치관은 불화하고 있어. 정말이지 이런 날에는 나뭇가지마다 꽃봉오리들을 관찰하며 응원도 좀 하고 등으로 햇살 받으며 기타도 튕기고 노래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하지만 매일 밤늦게, 그리고 주말까지 너희를 보면서 정이 점점 드는 건 또 좋은 일인 것 같다. 또 어제 찾아온 졸업생 녀석들처럼 너희도 머지않아 활짝 웃으며 한껏 꾸민 젊음으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면 그럭저럭 견뎌낼 만도 해.

너희와 상담을 모두 마쳤다. 너희의 꿈들은 별처럼 많기도 했다. 너희의 꿈들은 그렇게 스스로 빛나기도 했다. 그 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보자.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그 빛을 따라가면 될거야. 나는 너희가 넘어졌을 때 손도 내밀어주고, 꿈들이 빛을 잃지 않게 용기도 불어넣어주고, 길을 잃고 해매일 때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상념이 길어졌다. 짧은 글이지만 쓰는데는 오래 걸렸다. 조금만 천천히 읽어준다면 우리의 상념들이 만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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