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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Apr 10. 2018

우리의 목표는 아득히 있고, 그 실패는 일상적이다

누군가는 간택되고 대부분은 패배한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요즘, 나는 몸이 안 좋다. 감기 몸살이 심해 월요일에는 조퇴도 했다. 작년 이맘때도 위염으로 고생했는데, 올해는 감기몸살이다. 계절의 교차는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오늘은 수요일, 자습으로 가득찬 하루다. 도교육청에서는 ‘숨요일’이라는 이름으로 작년부터 수요일에는 방과후학교와 자율학습을 실시하지 말고 학생들이 신나게 동아리 활동도 하고 숨도 좀 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지만 3학년에게는 예외다. 대한민국의 고3은 참 예외적인 존재다. 모든 것에서 논외이고, 그만큼 특별하고 동시에 소외되어 있다. 봄에 피는 꽃과 청명한 하늘과 새빨간 연휴들은 우리 것이 아니다.


 오늘은 부장님이 자습 중에 공부 잘하는 아이 몇을 따로 불렀다. 각반에서 ‘간택’ 된 아이들은 이러저러한 특별한 우월감을 주입받았을 것이다. SKY를 갈 ‘자원’이 되었다며 우쭐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교무실로 떠나고 남겨진 34명의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나는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패배하는 경험을 한다. 4등급도 못 맞아서, 3등급이 안되어서, 2등급 안에도 못 들어서 국립대에 실패하고 인 서울에 실패한다. 언제나 우리의 목표는 아득히 있고, 우리의 실패는 일상적이다. 상대평가는 매정하게 줄을 세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앞뒤 행렬의 중간에서 우리들은 고개를 빼꼼거린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서로 자리를 빼앗으려 악다구니다. 아니 사실은 어른과 사회가 내리누른다. 내가 서있는 자리를 보고 나의 자리가 아니라 한다. 자꾸만 다른 자리를 강요한다. 


 심지어 아이들 사이에서는 공부 잘하는 애들은 비교과 활동을 학교에서 알아서 ‘챙겨준다’는 소문마저 돈다.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수상실적 등을 조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사실이 아니지만 이미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아이들이 학교에 실망했을 것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숨고만 싶다. ‘학교’와 ‘교육’은 참으로 세련된 언어와 몸짓으로 아이들을 폭행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선을 긋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들어가 움츠린다. 아, 나는 이 시스템의 어쩔 수 없는 가해자다. 상위권 애들을 따로 부르는 부장님을 말렸어야 했다.


 창밖에는 여전히 봄이 스며들고 있다. 창밖을 보는 아이들은 마치 꽃이 꽃에게 인사하는 것 같다.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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