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길에는 끝이 없어도 좋다
우리 몸의 중심은 배꼽도 심장도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다. 작은 혓바늘 하나에도 온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세상도 그렇다고 배웠다. 가장 아픈 곳이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 세상은 그 중심을 회전축 삼아 천천히 조심스레 돌아야 하는 것이다.
일기를 꽤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는 모든 것을 합리화해준다. 사실 바쁘다는 것은 말그대로 핑계일 수 박에 없다. 이 일기를 쓸 때는 오롯이 아이들을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내게는 이 일기가 정말 소중하다.
4월이 시작될 무렵 4.16 기억교실에 다녀왔다. 온전히 보존된 교실은 아니었지만 그 교실들에서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가슴에서 목구멍까지 울컥 차오르는 기묘한 압박이 괴로웠다. 그곳은 온통 노란색이었고, 파란 아이들은 이름만 남아있었다. 한명 한명 이름을 되뇌었다. 비로소 304명의 희생자가 아닌 ‘그들 개개인의 삶’이 보였다. 너무나 흔한 이름과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였다. 아이들이 부모님들께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들은 ‘미안해’, ‘사랑해’ 이 뿐이었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언어는 사실 별다른 수사가 필요 없다. 가장 기초적이라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우리는 때로 구태여 말하지 않고 산다. 안산은 벚꽃이 일찍도 피었다. 그 벚꽃 아래에서 아이들은 수학여행 전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었다. 상상하기 끔찍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상상해야만 했다. 그날,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오르고, 구하러 와줄 거라는 믿음 속에 몇시간이고 속절없이 가라앉는 뱃속에서 극한의 공포를 겪었을 아이들을. 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고통스럽지만 그 아이들과 어머니 아버지와 살아남은 가족들과 그 친구들의 고통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우리반과 다름없는 교실에서, 우리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꼭 닮은 그들의 웃음과 낙서와 꿈들을 온 몸으로 들으며 속절없이 나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나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아이들. 그리고 지금 우리반 아이들. 고3 담임을 오래하며 가끔 아이들이 숫자로 보일 때가 있다. A는 2.4등급. 서울권 종합전형 아니면 경기권. 우리 지역 국립대 상위권 학과. B는 4.5등급. 종합전형 지방대, 전문대도 노려볼 것. 이런 식으로 말이다. 돼지고기마냥 1년에 네 번씩이나 아이들에게 등급을 찍어대는 이 시스템에 복무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세월호는 이런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다짐이다. 교육은 세월호 전과 달라져야 한다. 아이들의 성적이 아닌 개개인의 삶을 보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아이들은 여전히 노란리본을 가방에 교복에 달고 다닌다. 어른들은 금세 잊었지만 아이들의 기억과 실천은 더 강하고 오래간다. 어느새 단원고 아이들보다 더 커버린 우리 아이들은 그 형, 언니의 나이를 아프게 지나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려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 노란리본은 추모를 넘어 내가 아이들에게 경건하고 겸손하게 설 수 있는 굳은 약속이다. 내게 세월호는 선생으로서의 나침반이다. 나침반이 그러하듯 나는 늘 떨고 있겠지만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길에는 끝이 없어도 좋다.
2018.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