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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May 21. 2020

월급의 추억

월급 주는자의 악몽

21일...

월급날이다. 

월급쟁이에게 이날처럼 좋은 날이 있을까?

대학 졸업 후 회사 입사 후의 첫 근무지인 창원에 있는 **중공업에서는

매월 21일이 되면 현업에서 1~2명을 차출해서 급여 작업을 했다.

당시만 해도 현찰로 급여 지급할 때다.

인사과 직원은 몇 명밖에 안되니까 현업부서에서 차출해서

대회의실에서 급여나눠줄 돈 세는 작업을 한다.

인사부서가 워낙 끗발이 쎄니까 오라면 무조건 가야 되던 시절이다.

안 가면 두고두고 씹히던 때였다.

대회의실에 모여서 여상 나온 여사원으로부터 잔소리 들어가며 돈을 센다.

만원, 오천 원, 천 원, 오백 원 동전, 백 원 동전 심지어 십원 동전까지

골고루 월급봉투에 넣어야 된다.

10원이라도 틀리면 봉투에 넣은 돈을 다 끄집어내서 다시 작업한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다.


2001년 초 중국 북경에서 작은 회사의 대표 때 일이다.

얼떨결에 자그마한 회사의 대표랍시고 일을 할 때다.

대표라고는 하나 주로 영업 관련 일이 주 업무다.

그전까지 해온 거라고는 플랜트 설계, 공사 관리, 국내 영업, 해외영업,

해외 사업전략, 신규사업기획 등이었다.

관리, 인사, 재무는 평생을 해본 적이 없었고 개념도 없었다.

월급은 21일이 되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줄 알던 시절이다.

한국의 모기업에서 만들었던 현지 회사는 대기업의 입문 교육받고

현업을 거쳐 주재원으로 파견 나온 한국 직원은 없었다.

현업 위주의 한국인 직원만이 서너 명 있었고

나머지 분야는 중국 직원들로 겨우 겨우 꾸려가던 시절이다.

2001.2.19일의 일이다.(하도 데어서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관리(인사,재무,총무등등)를 하던 중국인 직원이 대표인 

나에게 찾아와서는 이번 달 21일 월급을 지급할 수 없노라고

보고한다.


뭐? 숨이 헉 막힌다.

21일 월급날 직원들 월급을 못준다는 것은

회사가 망하는 거고 그전에 대표와 관리담당은 당연히

짤리는게 모회사의 오랜 전통이라고 들어왔던 터다.

회사는 창업 이후 단 하루도 월급을 늦게 주거나 못준 적이 없다는 게

전설처럼 내려왔었다.


왜?

이번 달 돈이 없단다. 3월 초에 입금되는 게 있는데

그때 들어오면 3.21일에 2개월치 급여를 한꺼번에 지급하면

되니 걱정 말라고 오히려 대표인 나를 안심시킨다.

하늘이 노래지고 그놈을 패 죽이고 싶었다.

패 죽이는 건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돈이 없다는데 다른 방도는 없다. 돈을 구해야 한다.

그때부터 북경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돈을 구하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돈, 아는 사람에게 닥치는 대로 돈을 꿨다.

그래도 그 당시 나름 개인 신용이 좋아서 가능하던 일이었다.

난리 난리 펴서 겨우 급여 총액을 맞춰서

21일 퇴근 직전에 가까스로 급여 지급이 됐다.

휴...

행여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소문 안나게 조용히 조용히 처리해야 했다.

소문났으면 대표가 잘리는 건 당연한 거고

그렇잖아도 마뜩잖은 신규회사는

때려치워! 당장 문 닫아! 기본도 안 된 것들이 무슨 사업한다고...

이런 분위기였으니까...

당연히 대표인 나의 급여 줄 돈은 없다.

그거까지 포함해서 돈을 꿔서 준비한 건 아니었다.

2012.12월 회사를 그만둘 데까지 30년 동안

월급날 21일에 월급 못 받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고

유일하다.

돈을 꾸러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이 사태의 근본 원인 및

반성에 들어갔다.

1. 관리에 대해 무지

2. 캐시플로우가 그 어떤 거보다도 중요 및 최우선

3. 대표는 특히 스타트업이나 자그마한 회사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야 한다.

등등...


2001년 2월의 일이다.

월급을 겨우 지급한 다음날 관리랍시고 하던 놈을 단칼에 짤라버리고

다시 채용후 대표 직할체제로 운영한다.

영업이 중요한 게 아니고 회사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및 시스템을 세우는 게 급한 거였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에 신규회사는 기존 회사와 모든 걸 달리 하자는 통에

기존 조직과는 모든 게 단절되어 있었다.

그때는 서울 본사(본사의 역할을 하는 곳도 없었지만...)에

고민하다가 도저히 몰라서 어렵사리 물어보면

그건 대표가 알아서 하는 거예요..

대표가 그냥 하시면 돼요..

그런 거 하라고 대표가 있는 거예요...

이런 식이다.


전혀 도움을 못 받던 시절이다.

서울 본사의 재무팀에서 관장하던 시절이긴

했으나 닷컴 버블 이후 내 몰라라 할 때다.

당시 거기에 모 전무와 그의 쫄따구 몇 명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개인기로 모든 걸 풀어나가야 한다.

21일이 되면 자동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줄 알았던 거에 대한

엄청난 교훈을 몸소 체험했다.

그 이후로도 매달 살얼음판이 계속되었다.

매출이 없으니 돈이 없다.

고정비는 매월 계속 지출된다.

통장은 점점 말라간다.

현지은행에서 대출도 불가능하다. 은행에서는 본사의 지급보증을 요구하는데

지급 보증해줄 본사라는 게 없다.

설사 있더라도 보증해주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매달 다가오는 21일이 무서워졌다.

그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자고 걱정만 했다.

대기업 그룹의 회사에 입사해서 이런 고민을 해 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그때의 유일한 소망은 3달, 6달, 1년 치 고정비 지출 가능한 캐시만 

보유해 봤으면...이었다.

접대비는커녕 회의비도 없다.

고객과 미팅하면 고객한테 빌붙어 얻어먹어야 했다.

쪽팔림도 없다. 그냥 개긴다.

출장 숙박비도 2인 1실이다.

모든 관리의 포인트는 캐시플로우에 맞췄다.

그로부터 개고생 끝에 사업이 제 궤도에 올라 영업이 쫌되고

매출이 올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하지만  3달, 6달, 1년, 3년  수입이 0이 되더라도

먹고살 정도로 비축될 때까지 마음 놓지를 못했다.

긴장의 연속이다.

3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먹고살고 그냥저냥 회사는

돌아갈 정도는 되었다.

시작할때 15명이던 회사는 내가 떠날때 1,200명정도로 커졌다.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다.

2012.12말에 퇴직할 때 후임인 남**대표가

그때 못 받은 나의 월급을 가지고 왔다.

그 교훈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잘하겠노라고 하면서....

다시 남 대표에게 돌려줬다.

계속 긴장감 갖고 잘하시라고....

회사 근무 30년 동안 유일하게 월급 못 받은 추억이다.

이제야 공소시효도 지났겠다 싶어 고백한다.


요즘 벤처기업, 스타트 업 대표들 만날 때마다 

강조하고 가르치는 게 캐시플로우 온리 다.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 중장기 비전이니 신사업 발굴이니

복리후생이니 워라벨이니 그레이트 컴퍼니....

개뿔도 소용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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