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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May 07. 2020

장미와 쓰레기

나는 장미꽃이 싫다.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장미꽃은...
여자뿐 아니라 꽃을 선물하면 다들 좋아한다.
남녀노소 구분할 것도 없다.
무뚝뚝의 대명사 갱상도 남자들도 꽃 선물하면 겉으로는
팅팅 거려도 속으로는 엄청 좋아한다.

30여 년 전에 미국에 이민 간 동생이 작년에 고국에 다니러 왔을 때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께 가지고 간 건 맛있는 음식이나 용돈이 
아니고 장미꽃 한 다발이었다.
요양원에 계신 분이 돈, 음식이 뭐 필요하겠나...
요양원 가신 이후 어머님의 환한 얼굴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주 찾아가는 나는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좋아하셨던
음식을 만들어 가긴 했어도 꽃을 사간적은 없었다.

꽃은 아름다우니까 다들 좋아하는게다.
하다못해 밴드에 올라온 꽃 사진만 봐도 좋지 않던가....
이쁜 꽃으로 장식된 테이블이나 가정을 보면 품위가 느껴지고
교양 있어 보여  더욱 그렇다.
유럽의 집이 이쁜 건 창문 밖의 발코니에 꽃을 놓아서이다.


그런데 나는 장미가 싫다.

중국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해서 생활하는 중에 제일 적응 안되고
어려운 게 쓰레기 분리수거였다.
물론 중국에서도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한다만 우리처럼 엄격하고
까다롭지는 않다. 대충 내다 버리면 되었다.
아울러 여기서는 맘대로 버리기 조차 힘든 재활용품은 거기서는 
그야말로 재활용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로 먼저 가져가려고 하니까
처리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여기서는 돈 주고 버려야 되는 물건이 거기서는 돈 받고 주는 식이다.

가정용 쓰레기를 처리하려면
이게 재활용인지, 매립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다음에 그것이 플라스틱, 비닐류, 종이류인지 분류해야 한다.
일반적인 거야 보면 알 수 있다만  아닌 것도 많다.
살짝 코팅된 종이는 비닐인지 종이인지?  택배 박스에 붙어있는 스티커까지
제거해야 종이로 인정해 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남이 안 볼 거라고 대충대충 버리고 오긴 한다만 아파트 경비한테 걸리면 잔소리를 들으니
짜증 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어느 정도 분류법과 버리는 방법 등이 몸에 익었다만
제일 어려운 게 장미꽃이다.
꽃은 피어있을 때나 꽃이지 시들고 버릴 때면
이것처럼 귀찮은 게 없다.

장미꽃이 시들면 버려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다.
우선 이게 음식물 쓰레기 인지? 음식물쓰레기에 버려도 되는지
판단해야 한다.
소각/매립을 시켜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음식은 아니지만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하나...
음식물쓰레기봉투는 매립용/소각용에 비해 봉투가 작다.
일반적인 음식물쓰레기는 물기를 꼭 짜서 부피를 줄여서
봉투에 넣어 버리면 그나마 쉽다만
장미는 버리려면 가시 때문에 작은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기가 어렵다.
억지로 하려면 손에 가시가 찔린다.
한두 번 찔리면 열 받을 수밖에 없다.
부피를 줄이려면 줄기를 잘라버려야 한다.
부피를 줄이고 난 후 이걸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넣을지
소각용 봉투에 넣을지 정해야 한다.
여자들은 콩나물 한 봉지 값을 깎는데 목숨을 거는 거처럼
헐렁하게 채운 쓰레기봉투에 목숨을 건다.
압착해서 꽉 채워 버리려면 백 프로 가시에 손을 찔려야 한다.
대충 채워 버리려면 봉투 아깝다고 난리다.
스타벅스 커피 한잔 안 마시면 한 달을 편안하게 넉넉하게 쓰레기 버릴 수
있는데 말이다.
 - 물론 스타벅스 커피 안 마신다 쳐도 쓰레기봉투 낭창하게 버리는 건
   용서가 안되고 죽음이다만... 

장미 줄기는 가시도 가시지마는 줄기 자체가 질겨서
자르기가 쉽지 않다.
이 장미 줄기를 접던가 꾸겨서 부피를 줄이는 일은 까다로우면서 어렵다.
잘라 버리면 돼!
이론은 쉬운데 결코 쉽지 않다.
자르려면 집에 있는 가위로 해야 하는데
가정용 고기 자르는 가위나 문구용 가위로는 절단이 잘 안된다.
몇 번 하면 손이 아프고 지친다.
도마에 올려놓고 생닭 자르듯이 제일 큰 식도로 내리쳐야 겨우 잘린다.
내리치면 잘리긴 잘리는데 온 사방에 튄다.
그렇다고 이게 장작 패듯이 패서 되는 것도 아니다.
톱으로 썰면 된다만 그 역시 쉬운 작업은 아니다.
썰려면 한쪽을  단단히 잡고 썰어야 하는데 잡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톱이라는 게 웬 간 해서는 아파트에서 쓸 물건이 아니다.

단독주택에 살거나 전원주택에서 관상용 나무와 과수를 심는 사람이면 모를까
아파트 생활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전지가위 쓸 일이 별로 없다.
화초 정리는 집에 있는 일반 문구용 가위로도 충분하다.

결국은 쓰레기 분리수거 때문에 전지가위를 구입했다.

시든 장미꽃 처리할 때 이것처럼 편리한 게 없다.
절삭력이  식도로 홍당무 정도 자르는 것처럼 편하다.
5~10센티로 적당히 잘라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거나
줄기를 모아서 뒷산 갈 때 가지고 가서 숲 속에 버리면 끝이다.
꽃 중에서는 장미꽃의 줄기가 제일 질기고 자르기 힘들다.
한때 이뻤던 女ㄴ이 늙어 성질부리듯이...

보는 건 잠깐인데 뒤처리가 너무 귀찮다.
꽃보는 즐거움과 행복이 사후처리보다 덜하니까 어쩔 수 없다.
장미꽃과 쓰레기는 연상 단어다.
쓰레기 통에서 핀 장미라는 말도 있잖은가...

우리네 인생과도 많이 닮았다.
이제 우리는 시들어 가는 꽃이다.
곧 버려질 때가 온 게다.
화무 십일홍 花無十日紅이다.
그나마 한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뒤처리 때문에 싫었던 장미가 전지가위 하나 장만한 후로는
다시 좋아졌다.

계절의 여왕은 5월이고 5월이면 장미의 달이다.
코로나-19 덕에 요즘 꽃값도 예전에 비해 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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