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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Jan 21. 2020

울릉도(4-마지막)

울릉 세무서

오징어 잡이 배 밖에 없던 섬은 이제는 어업보다는 관광이 주 업인듯했고

심층수 뽑아서 파는 물공장이 하나 있고, 7080 가수 이장희가 산다고 해서

유명세를 탄다.

실제 얼마나 거기서 거주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름값은 하는 듯하다.

섬 일주도로 완공 후에는

비행장도 건설된다고 하니 접근성이 훨씬 용이해지겠다.

비행기라는 게 50인승 정도의 작은 비행기일 거라고 한다.

활주로 자체가 작으니 그 정도라는데....

늘 기상이 안 좋은 울릉도에 얼마나 자주 뜰지는 모를 일이다.


섬 전체에 평지라고는 나리분지라는 곳이 유일하다.

골프장 9홀 정도 지으면 딱 맞는 싸이즈다.

전에는 나리분지에서 논농사를 지었다는데 요새는 각종 약초, 명이나물 등

나름 고소득 작물만 한다.

일반적으로 촌 마을에 가면 경사가 있을때 마을 어귀에   **초등학교 몇 회 ,아니면 누구 아들이 이번에

행정고시에 붙었다더라 아니면 육군 준장 진급했노라 라는

플랭카드가 걸리는데, 울릉도는 쪽수가 얼마 없어서 그런가

저동 초등학교 출신 누구가 경찰 총경 진급했노라고 도동항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플랭카드를 걸어놨다.

일반적인 촌에서는 적어도 경무관 진급 정도 되어야 걸린다.

(아, 물론 총경도 고위직이라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긴 하다만..)


섬의 대부분 선출직 고위직은 다들 동네 아는 사람들이고

울릉종고(종고라는 특이한 학교는 지금은 별로 없다만 촌에서 인문계와 상고, 공고가

혼합되어있는 그런 학교니라... 주로 촌놈들이 가는 곳이지...

예; 철원 종고, 봉화 종고.....) 출신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면서 돌려먹기 하고 있다.


40년 전에 귀한 분을 만나 섬을 나와서 무사히 귀가할 수 있던 그 기억이 떠올랐고

생각난 김에 울릉 세무서를 무작정 찾아갔다.

작은 세무서이긴 하지만 그래도 직원은 몇 명 있다.

그런데, 일선 창구 직원이 묻는다. 무슨 용무로 오셨냐고?

부가세 신고할 것도 아니고 근로소득세 환급받을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무조사 이의 신청할 거도 아니다.

(참고로 울릉도에서는 워낙 기업이 적고 할 일도 없고 세수도 적어서

세무조사를 해본 적이 없단다.... 하기사 뭐 뜯어낼거나 있겠는가?)

사업하는 친구들 있으면 稅籍을 울릉도로 옮기라 캐라... 세무조사 없는 곳에서

맘 편하게 사업하라 캐라....


어떤 용무냐고 묻는데... 그기..딱히 할 말이 없는 거라..

주저리주저리 다 설명하고 서장을 만날려니 그게 더 복잡하다.

그냥 서장님 만나 뵙고자 왔노라고, 10분 정도 차 한잔 하면 좋겠다고.

그 직원은 이 황당한 면담 요청자에게 일종의 경계심이 있었는지

서장님 지금 안 계세요!라고 딱지를 놓는다.

세무서 밖에 세무 서장용 인듯한 차 가 있고 , 세무서 민원실내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세무서장은 방에 있는 것 같았으나

내가 총리실 산하 연말연시 공무원 근태 특별점검반도 아니고, 서장실을 한번 열어 봅시다 라고 할

강심장도 아니요 또 그럴만한 사안도 아니다.


아, 그러세요?  사전에 약속도 안 하고 그냥 무턱대고 찾아왔으니 별 방법이 없다

그럼 오후에 다시 오면 뵐 수 있냐고 했더니

점심식사 후에 다시 오란다.

울릉도 명물이라는 따개비 칼국수 한 그릇 먹고 다시 쳐들어 갔다.

서장은 방에 혼자 있었다.  쭈뼛쭈뼛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이게 무슨 민원도 아니고 그저 지나가는 관광객의 넋두리 밖에 더 되겠는가?

울릉 세무서장 역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 선하다.

무슨 용무로 저를 찾아오셨냐고?

혹시 세무행정에 불만을 품고 숨겨온 휘발유 통에 불이라도 지를까,

세금 때문에 회사가 망해서 사시미 칼 들고 너 죽고 나 죽자 덤벼들까 아니면

자해행위라도 할까 싶어서 인지 잔뜩 졸아있다.


세무서장은 나이가 30대 후반의 젊은이였다.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어찌 알며

그런 게 인수인계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설사 되더라도 40년 동안 전달될 리가 없다. 세무서로 치면야 오지중의 오지인데

말뚝 공무원이 있을리도 없고 로테이션되는 시스템일 터이니 더더욱이 모를수 밖에 없다.

차분이 앉아서 40년 전을 회고했다.

긴장하던 서장은 조금씩 마음을 누그려 뜨리기 시작한다.

주어진 시간 10여분 동안 얘기를 들어주었다.

소파 옆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접대용 박카스를 한병 꺼내 줘 가며 말이다.

다 듣고 난 후에 서장도 그런 훌륭한 국세청 선배를 뒀다는 사실에 자신도 뿌듯하고

행복하단다.

둘이 한참 동안 40년 동안 바뀐 울릉도의 이런저런 것들을 얘기한 후에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40년 전에 받은 은혜를 갚고자 작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서장은 이런 거 안 받는 다면서, 요즘 세상에 큰일 난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누구 죽일 일 있냐면서...

이것은 뇌물이 아니다... 내가 너한테 뇌물 줄일 뭐 있냐? 울릉도에서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울릉도에서 사업할 것도 아니다.

난 이미 은퇴해서 앞으로도 세무서와 친해야 할 일이 별로 없다.

나라에서 내라는 세금은 한 번도 어긴 적 없이 다 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겨우 설득시켜서 작은 봉투 하나를 줬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고 하면서....

직원들과 식사나 하라고.

젊은 서장은 겨우 겨우 버티다가...

자기도 40년 전의 그런 상사가 되고 싶노라고, 좋은 곳에 쓰겠다고 하면서 받아들였다.

젊은 서장은 그래도 아쉬웠는지

명함 하나 달라길래....

난 백수라 명함이 없다....

그럼 이름 석자 만이라도....

그런 거 알릴라고 여기 온 거 아니었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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