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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Jan 20. 2020

울릉도(3)

은인을 만남

돈도 없다. 배는 안 간다.

도동항 부두에 하릴없이 나가서 포항 가는 배 언제 떠나는지 묻고 또 묻는다.

묻는 놈이나 똑같은 대답하는 안내양이나 뭐 특히 다를 건 없다.

영혼 없는 질문에 무심한 답변뿐이다.

하루가 지났다.

민박집 아줌마의 배려로 하루는 버텼다.

이틑날도 풍랑이 심해서 배는 안 간다.

가난한 민박집 주인에게 신세 지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힘들다.

또 부두에 나가서 바다를 본다.

흥부 둘째 딸 마냥 아무 생각 없이 고픈 배를 달래며 그저 바다만 바라본다.


요새와 달리 객지에서 돈 떨어지니 그저 황망하다.

신용카드가 있나? ATM에서 돈을 뽑을 수가 있나?

집에 SOS를 쳐야 살 수가 있는데... 

당시에는 우체국에서 SOS를 치면 우편환이라는 일종의 수표로

보내고 그걸 울릉도 우체국에서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민박집에 전화도 없었고 괜히 집에 연락해봤자 집에서 걱정하실게 뻔하다.

그저 며칠 더 버텨보자고 했다.


그 당시에는 대학생도 귀했을 뿐 아니라 대학생이 되면

가슴에 훈장 마냥 뱃지를 달고 다녔다.

요즘 애들은 대학생이 되어도 뱃지 달고 다니는 애들 없다.

서울대 아니라 하버드 다녀도 뱃지 안 달고 다닌다.

대학생이 특수 신분이지도 않고, 굳이 들어내 보이고 싶지도 않고

되려 서울대 다닌다는 거 표 냈다가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

서울대 다닌다는 거는 그학생의 엄마나 좋아할까 먼 친척은 한번 듣고 곧 잊어버린다.

게다가 요즘애들은 그런 거에 무신경해서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배 곪고 부두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때...

웬 분이 우리 가슴에 있는 뱃지를 보더니

어? 연세대 다녀?

네... 그런데요?

응. 나도 연세대 나왔어. 연대 경영학과..

이게 웬일?

그분은 울릉도 유일의 세무서에 근무하는 대학 선배였다.

말이 대학선배지 본 적도 없었고 연결고리도 없는 그냥 같은 대학 동문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다.

글쎄, 그때 세무서에 근무 중이었으니까 우리보다 10년? 그 이상의 선배 아니었을까?

우리가 20살 때니까...

이분이 생면부지의 , 낯선 울릉도 도동항에서 그저 처음 본 우리에게 구세주가 된 거다.

저녁에 술 사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인즉 서울 종로 세무서에서 근무하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울릉 세무서로 좌천당했다는구나...

세상에나.... 당시 서울 종로 세무서라면 대단한 곳 아닌가? 세수의 규모가 울릉도와

비교나 되었겠는가?

무슨 대역죄를 지어서 천당에서 지옥으로 좌천당했는지는 모르겠다.

얘기를 했는데 기억이 없는지, 당시 우리의 지적 수준으로는 이해를 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선배님 덕분에 우리 넷은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었다.

해산물 위주의 울릉도에서 소, 돼지를 먹는 호사를 누렸다.

엄청 비쌌으리라..

덕분에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또 서울 올라갈 때 기차 안에서 뭐라도 사 먹으라고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이젠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고마운 마음밖에는...

물론 서울에 돌아와서는 우리 넷 모두 진심이 담긴 감사편지를 보냈다.

나중에 이분은 사고로 사망하셨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또 한 번 놀랐었다.

그때는 내가 지방에 근무할 때 아니었나 싶은데..


울릉도에서 며칠 동안이나 신세를 졌는지도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풍랑이 멎고 배가 떠나서 우리는 포항으로 나왔다.

부두에서 나의 장발을 잡았던 그 경찰 아저씨는 그저 씩 한번 웃더니 그냥 보내줬다.


나이 20 때 가 본 울릉도..

낯 선분에게 신세 지고 덕분에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울릉도..

더 늦기 전에 다시 가보리리라 했건만

바쁜 세월에, 중국에서 보낸 20년 객지 생활탓에 다 잊고 살았다.

나이 60에... 딱 40년 만에 겨울 울릉도에 갔다.

20세 때에는 친구 넷이 있었지만 

나이 60에는 금년에 대학 졸업한 아들놈과 둘이갔다.

포항에서 12시간 걸리던 배는 3:20 분 짜리 럭셔리 쾌속선으로 바뀌었고

여객선조차 항구에 못 대던 도동항은 최신식 여객 터미널로 바뀌었다.

판잣집 같은 집들이 대부분이었던 울릉도는 호텔, 모텔, 리조트 단지가

즐비하다. 웬만한 도시보다 부동산 가격은 더 비싸단다.


섬에 웬 다방은 그리 많은지...

도동 다방, 한일 다방, 수 다방, 수향 다방, 진 다방.....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이디야  커피숍은 없고

푸근한 이름의 다방만 많다.

대부분 겨울이라 문을 닫아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그 다방이 티켓다방인지 아니면 , 한복 입은 마담이 손님한테 꼬리치며 쌍화차 한잔 더 시켜서

매상 올리는 그런 다방인지는 분명치 않다.

울릉도 어린이들이 육지에 다녀와서 찍은 어린이 육지견학단 환영회다.

간첩선박 신고하여 500만원 상금타자 는 현수막이 보인다. 

요새는 간첩선박 잡으면 5억으로 인상되었다.

가난이 저절로 보인다.

옛날 도동항 전경 - 왠지 서글프다


현재 울릉도 인구는 10,000명 정도라도 행정구역상 군이다 보니 있을 건 다 있다.

군청, 성당, 수많은 교회, 경찰서, 국민연금 울릉 지사, 한전 , KT 울릉 지사, 세무서....

게다가 울릉군 선거관리위원회도 있니라...

세상에나.. 거기도 선거관리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으니 말 다했다.

선거 없는 해에는 그 사람은 일 년 내내 뭐하고 지내나 몰라..

개표용지 계속 확인 , 확인 하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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