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평생에 한두 번 이가 갈리는 일을 겪게 되고
그런 일이 있으면 다시는 그 동네 쳐다보기가 싫어진다.
대표적인 곳이 논산이다...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나면 다들 논산을 향해
오줌도 안 눈다고 했다.
군관 출신들은 광주 보병학교의 아픈 추억 때문에 광주/장성
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중공업 창원 공장 보일러 설계 보기 파트 대리가 되어 어느 정도 설계 일을 알 때였다.
일반적으로 수주산업은 영업-견적 미쯔모리 - 계약 - 설계 - 생산- 제작 -
설치 - 시운전 - 납품 - 공사 완료의 프로세스다.
중공업은 산업합리화 조치에 의거 한국전력의 대형 발전소 시장은
진입이 금지되어있었다.
대타로 할 수 있는 게 민간분야의 열병합발전소
정도다.
당시 포항제철이나 대규모 화학단지에서나 자체 열병합발전소를
건설/운영할 때다.
대구는 섬유 염색의 도시였고 그걸로 대구 경제가 돌아갈 때다.
중소형 업체들이 밀집되어 산업단지를 이루고 저효율의 에너지를 소모할 때다.
많은 업체들이 모여있어 각자의 공장에 소형보일러를 설치해서 공정용 스팀을,
작다 보니 산업용 전력도 비효율적인 저전압 위주로 사용하는 거다.
**중공업에서 이를 전체적으로 통합해서 염색단지 내에 열병합발전소를 짓자고 건의하여
100여 개에 이르는 공장의 보일러를 통합하여 고온 고압 발전보일러를 건설하여 터빈을 통해
전기도 생산하고 스팀도 공급하는 일을 추진하여 성공한다.
이 공사는 당시 견적이 다른 일에 바빠서 그랬는지 영업/설계 가 견적을 해서
계약 후 공사를 추진한 경우였다.
설계의 신** / 미쯔모리의 박** 는 대학 동기였지만 그때는 내 몰라라 쌩깔때였다.
견적이 관여 안 했으니 원가를 책임 못 지겠다는 거다.
그 당시 그 공사 품의서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견적 부서의 합의 사인이 없다.
세상에 힘들다고 피하고 고때만 넘기면 되겠지... 해도 그런 일이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니다.
되려 적극적으로 맞서는 게 낫다. 어차피 맞을 일이다.
먼저 맞나 나중에 줘 터지나 그게 그거다.
세상일이 늘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다 융화되는 거 아니겠는가...
대리 초에 시작한 공사는 과장 때에 현장에서 시운전까지 마무리해서 끝이 났다.
엄청난 시간과 손실 후에 끝이 났다.
물론 요새 **물산의 건설부문이 해외에서 깨 먹는 거에 비하면
비스킷 정도지만...
일반적으로 발주자인 원청이 제대로 된 회사 , 대기업이나 공기업, 예를 들어
포항제철, 유공 SK , 대한유화, 삼성종합화학 등과 같은 회사는 갑 과 을 을 떠나
공사 중에 문제점이 있으면 서로 협의해서 해결을 한다.
그 후에 잘잘못을 따지고 돈을 주고받고 , 일방적인 손해는 없도록
조정이 된다.
그러나 대구염색공업 협동조합처럼 주인이 없는 조직은 서로의 이해에 따라
수시로 원칙이 바뀌고 조합장이 바뀔 때마다 딴소릴 한다.
골대가 수시로 바뀌고 운동장은 수시로 기울어진다.
끝이 없다.
삼성이라는 만만한(?) 대기업을 상대로 등쳐먹기가 시작된다.
삼성의 발원지가 대구다..
이것도 약점의 하나가 되었다.
그 당시는 전두환 시절이었다.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전두환 시절이다.
대구염색공단의 중소기업 오너들의 출신이 대구공고 출신이 많았다.
대구공고=전두환=대구=삼성
희한한 조합이 완성되었다.
최악의 조합이다.
수주는 했지만 수행이 만만찮았다.
인맥이 중요하다고... 그놈의 인맥을 찾자고....
부산/창원 정구지 베이스인 **중공업은 부산공고, 경남공고 출신들은 많았지만 대구공고 인맥이 별로 없다.
관계사인 제일모직/제일합섬 등의 대구공고 출신들을 차출한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관계사 이동은 쉬었다...
대구공고 출신을 부장으로 영입해서 그 공사의 PM을 맡겼다.
공사 수주 금액 자체가 원가 정도의 아슬아슬한 공사인지라.
수행이 어렵다.
공사라는 게 수주할 당시에 비해 비용이 항상 ,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은 법이다.
일반적으로 제일모직/합섬, 전관이나 화학공장의 장치 산업 공무 부서는
예산에서 그렇기 쪼이지를 않는다.
원가 개념은 주로 직접 부서에 해당이 되지 간접부서인 공무/정비부서에는
별로 감이 와 닿지를 않는다.
이러한 인적 스펙을 공사 원가를 책임 지우는 PM에 임명하니 공사 원가관리가
쉽지 않다.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추가 비용이 엄청 늘어난다.
공장의 관리부서는 공사 원가를 들먹이며 PM을 압박하고
부추의 부산 경남 PK들은 굴러들어 온 TK의 PM을 못살게 군다...
공사는 개판이 되어가는데 내부 결속도 안된다.
애당초 전쟁의 승리 요소가 별로 없었다.
발주자인 甲 대구 비산염색공단은 **중공업의 약점을 알아차리고는
수시로 계약에 없는 추가 요구를 하고 압박을 가한다.
그 공사는 그야말로 턴키 Turn-Key 계약이라 모든 걸 다 뒤집어쓰게
되어있었다.
상식적으로야 말하면, 의식 있는 甲이라면 그리 안 하지만
염색공업조합이라는 조직은 무대뽀다.
턴키계약이기 때문에 무조건 요구하는대로 해야 한단다.
뻑하면 서울 삼성 비서실에 투서를 넣고 이병철 회장을 만나야겠네
청와대에 가서 전두환을 만나야겠네....라고 떠든다.
이번 가을에 대구공고 전체 체육대회에 전두환이 오니까
그때 이일을 얘기하겠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공사 중에 실제로 염색공단 이사장의 친구인
전두환이 이순자와 함께 공사현장에 오기도 했다.
그전에는 공사현장에 와서 수시로 삥 뜯던 관할
파출소, 소방서, 환경청, 노동부 심지어 관세청
등등도 전두환이 한번 다녀간 이후로는 아예 발길을 끊는 장점도
생겼다. 행여 삥 뜯은 게 전두환 귀에 들어갈까 봐 줄행랑을 쳤다.
이런 와중에 대구공고 출신으로 영입한 아군의 공사 PM이
발주처인 甲의 공사 관리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악..
갑자기 乙이 甲으로 변한 거다.
그것도 공사 PM이....
공사의 모든 원가, 설계상의 문제점, 부실의 원인, 향후 대책
까지도 다 가지고 적군으로 넘어간 게다.
전방 GOP에 있던 육군 대대장이 통신병 데리고 월북한 거보다 더 큰 쇼크였다.
이순신 장군이 소서행장 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투항한 거다.
그것도
남은 12척의 거북 선중에 2호선 뒤줄 4번째 노가 부러진 거와
남은 군량미가 10일 치 밖에 안된다는 것과
대포알이 20개밖에 안 남았다는 세밀한 정보와 함께....
로마시대 갈리아 전쟁사, 중세 십자군 전쟁, 육이오 다부동 전투에서도 없었던
투항 사건이 발생한다.
게임 끝이다.
포커판에서 상대방은 내 패를 다 보고 치는 격이다.
이길 수가 없는 게 아니라 애당초 판이 안 짜진다.
창원 정구지들로 부터 벗어나서 서울로 가려다가 대구에 붙잡혀서
2년 이상을 대구 비산염색공단에서
설계, 제작, 설치, 시운전, 턴오버까지 담당했다.
나야 뭐 그리 고생했다고는 말 못 한다마는
무수한 사람들이 개고생 했다.
공사 책임자이신 이**상무님께서 제일 고생 많으셨다.
신의 직장이라는 포스코에서 오신
마음이 여리신 분인데 甲의 PM으로부터 육체적 폭행까지도
당하시기도 했다.
폭력 가해자는 현재는 다른 행성에 계신다.
가신지 꽤 됐다.
최후 정산작업까지 마무리 지었다.
나야 보조원 위주로 했지만 **중공업 영업총괄 임원으로
해결사로 나서서 막판 빅딜까지
하신 분이 나중에 삼성코닝 사장, 신라호텔 사장, 삼성전자
러시아 총괄, COEX 사장까지 하신 안** 사장이시다.
대구 현장에서 이분한테 Zol 나게 깨지기도 했는데
나중 1994년도에 **그룹 해외사업단장하실 때 다시 보스로
모시기도 했다.
이렇듯 대구라고 하면 그때가 떠올라 맘이 편치 않다.
여수 밤바다는 되려 낭만이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대구 염색공단 굴뚝 보면 그때가 생각나서
쳐다보고 싶지도 않고 오줌도 안 눈다...
근데...
어쩌냐
아직 장인 장모도 살아계셔서
1년에 몇 번은 대구에 가는데..
대신...
아직도 난 대구 매운탕을 안 먹는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