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웅크림’에서 ‘실존적 발버둥’으로
1. 염세주의의‘비관론’에서 실존주의의 ‘낙관론’으로
앞서 서론에서 본 고의 궁극적 목적은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과 무력감을 철학적으로 진단하고,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사상을 통해 실존적 위기 극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에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본 고는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의 양태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첫째, 기술 발전에 따라 위협받는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
둘째,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미래에 대한 대비의 부재와 불확실성.
셋째, 전쟁과 환경파괴 등 직접적 생명의 위협과 유한성의 자각.
넷째, 그러한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구조적, 실존적 불안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는 반-실존적 태도.
이후 이러한 각각의 양태들을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과 근본 기분으로서의‘불안’ 개념을 활용해 해석해 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은 하이데거의 시대의 그것과 달리 더욱 고도화되어, 한편으로는 더 경험적으로 직관됨과 동시에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찰하였다. 또한 이제 불안에 대한 감지가 단순한 사변적 차원의 논의를 넘어 직접적인 ‘생존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음을 밝히며 본래적-삶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논의에 이르러 우리는 현대인이 근본 기분으로서의 불안을 받아들이더라도, 주체로서 본래적- 삶을 살아내기에는 ‘자유’라는 이름의 장애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현대인은 자유라는 가치를 궁극적 목표인 것처럼 여기면서도 동시에 자유에 대해 ‘은폐’와 ‘부정’이라는 회피적 태도를 보이는데 이를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구분함으로써 도피의 네 양태를 다음과 같이 도출하였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유의 은폐
둘째,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유의 부정
셋째,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유의 은폐
넷째,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유의 부정
이후, 각각의 양태들은‘정체성화’,‘능력주의적 계층화’,‘미래에 대한 결정론의 수용’,‘환원주의 이데올로기’로 대변됨을 밝힘으로써, 자유에 대한 현대인의 태도를 체계적, 다층적으로 분석하였다. 사르트르의 자유 개념에서 자유란 단순한 지향이나 도피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존재론적 근거임을 천명한 후, 자유를 그 본질로 하는 대자존재에게 진정성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이후 이러한 개념을 이용하여 자유에 대한 은폐와 부정의 시도들이 모두 일종의‘자기기만’임을 증명함으로써 그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현대인의 실존감각에 대해 철학적으로 진단한다는 하나의 목적에는 분명하게 다가선 듯 하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였던, ‘실존적 위기 극복의 가능성 모색’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행한 진단들은 모두 현대인의 실존적 절망감만을 부각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존적 불안감이 심화되었음에도 본래적-삶에 도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현대인의 모습,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보이는 모순적 태도의 심화와 사회적 압박 등은 현대인이 진정한 ‘나’로서 자유롭게 살아가며 실존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는 비단 현대뿐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이 발흥한 20세기에도 줄곧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실존주의가 지극한 비관론으로 보이며, 그 끝에는 결국 염세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사르트르는 그러한 비판에 정면으로 맞서며 실존주의는 낙관론적 철학임을 분명히 하였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의 낙관성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거의 그대로 전하고 있는 구절이 있어 이를 인용하겠다.
“비겁한 인간은 스스로 비겁해지고, 영웅인 인간은 스스로 영웅이 된다... (중략) 인간의 운명이란 인간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이므로 그보다 더 낙관적인 이론은 없다. 또한 실존주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행동밖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 사람으로 하여금 살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것은 행동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으므로 사람이 행동하려는 것을 낙심시키기 위한 시도도 아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방곤 옮김, 문예출판사, 2018, p.38-39.
사르트르가 이러한 언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실존주의는 결코 앞서 언급한 다양한 비관적 조건들에 의해 굴복되는 인간의 비루함이나 나약함을 숭상하는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실존주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지적으로 미래를 살아낼 수 있는 주체의 힘을, 인간이라는 존재의 힘을 믿는 휴머니즘이요, 인간찬가人間讚歌이다. 비겁한 성정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이는 그 조건으로부터 평생 비겁하게 살며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났음‘에도’비겁하게 살지는 않기를 결심할 수 있다. 난쟁이는 키가 작게 태어났음‘에도’ 마음만은 큰 사람이길 의지할 수 있다. (물론 난쟁이가 물리적으로 거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영웅으로 ‘태어나는 이’는 없는 것이며 우리는 누구라도 영웅이 되기를 ‘의지’할 수 있다. 비록 그러한 진정성이 스스로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이는 염세주의가 비관론의 성격을 띄며, 주어진 것에 대한 수용과 의지의 단념을 통해 ‘더 편한’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것과 완전히 상반된다.
그렇기에 현대에 이르러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비관론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지나친낙관론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실존주의가 개인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나머지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 신음하는 약자로서의 주체를 조망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물론 종국에 이르러 실존주의 철학은 -사르트르의 앙가주망(Engagement) 개념이 개인의 책임을 넘어 타자에의 연대 가능성으로 번져간 것과 같이- 일종의 사회철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모색한 바 있지만 주체성에 대한 지나친 신격화의 덫에 빠져 좌절되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본 고 역시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는 여전히 실패하였다는 점에서 연구의 한계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필자의 예고와 같이 실존주의 철학이 다시금 사상사적 유행을 맞이한다면 뛰어난 연구자들에 의해 실존주의 사회철학이라는 새로운 연구의 지평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이다.
2.‘실존적 웅크림’에서 ‘실존적 발버둥’으로
이제 논고를 마무리하며 앞서 사용한 필자의 용어를 다시금 등장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염세주의 철학의 비관론은 극도로 부조리한 세상에서 현대인이 택한 관념적인 생존법으로, 현대인이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극도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 필자는 이러한 방어적 태도를 야기하는 정동을 ‘실존적 웅크림’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필자는 이와 대비되는 태도의 하나로써 ‘실존적 발버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기존의 방어적인 태도만으로는 결코 해소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들이 현상함으로써 발현되는 처절하면서도 능동적인 정동이다.
필자는 바로 이 ‘처절함’과 ‘능동성’이 실존주의 철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실존주의 철학이 행하는 존재 분석은 결국 존재자가 처한 현실의 부조리함과 비참함을 밝혀 보여준다. 그러나 그 결론에 이르러 실존주의 철학은 그러한 부조리를 직시한 이가 결국 주체성과 자유를 택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음을 윤리적 차원 이전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주장하고 있다. 즉 이때의 행동이란 인간의 본질과 현실로부터 다소간 강제됨으로써 처절함을 반영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존의 삶을 벗어나 인간의 본질로 다가가려는 의지적 행위임에서 능동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실존주의는 현대인이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느끼는 부조리 앞에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우선 바로 그곳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주체로서 있는 힘껏 발버둥 치라는 언명이다. 필자는 언젠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주체‘들’이 함께 바꾸어 낼 세상을 고대한다.
Ⅴ. 참고문헌
철학 원전 및 저서
Heidegger, M. (1927). Sein und Zeit. Halle: Niemeyer.
번역본: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글방, 1998.
Heidegger, M. (1929). Was ist Metaphysik?.
번역본: 마르틴 하이데거.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박찬국 옮김. 나남출판, 1998.
Sartre, J.-P. (1943). L'Être et le Néant: Essai d'ontologie phénoménologique. Paris: Gallimard.
번역본: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 Ⅰ,Ⅱ』. 정소성 옮김. 동서문화사, 2018.
Sartre, J.-P. (1946).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Paris: Nagel.
번역본: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방곤 옮김. 문예출판사, 2018.
Fromm, E. (1941). Escape from Freedom. New York: Farrar & Rinehart.
번역본: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김석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6.
Warnock, M. (1970). Existential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번역본: 워낙, 메리. 『실존주의』. 이명숙 관강제 옮김. 서광사, 2016.
관련 논문 및 연구
곽지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근본기분(Grundstimmung)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충남대학교 대학원, 2022.
박두희,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 나타난 인간과 자유의 존재론적 의미」, 국내석사학위논문,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2015.
우정민.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현상학적 신체론: 『졸리콘 세미나』와 『존재와 무』를 중심으로". 현상학과 현대철학, 제99집, 2023, pp. 29-56.
이창석. "'존재론적 불안'에서 '실존적 불안'으로: 하이데거(M. Heidegger)에서 사르트르(J-P. Sartre)에로". 범한철학, 제103권 제4호, 2021.
Taylor, C. (1992). Multiculturalism and the Politics of Recogni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번역본: 찰스 테일러. 『다원주의와 인정의 정치』. 박수경 옮김. 서울: 나남, 2000.
대중 철학 서적 및 관련 자료
한경매거진. (2024). "한국의 점술 시장 규모와 소비 트렌드". 한경매거진 비즈니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서울: 다산초당, 2023.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 (2021). 정신건강 실태조사. 서울: 한국정신건강복지센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2). 2017~2021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통계 분석. 서울: 건강보험심사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