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농사의 추억

어린 시절

by Wynn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벼농사를 지었다.

아버지는 봄이 되면 마른 논바닥에 물을 채웠고

어린 모를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를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마무리하면

그 해 농사가 시작되었다.


봄이 지나서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이 되면

아버지는 물이 넘쳐서 눈뚝이 무너질까 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논으로 향하셨다.


그렇게 고달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황금 들녘에 벼 이삭이 무르익으면서

수확을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일요일

나는 아버지와 논으로 향했다.

논에서 우연히 아버지와 어느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사육제(46제)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옆의 어머니에게 물으니

100 가마를 수확하면

60 가마를 우리가 갖고,

40 가마를 주인에게 준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우리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우리 집은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말 그대로 소작농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지주와 소작농.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바로 계급이었다.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에

'가난'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느껴졌다.

그때부터 팍팍한 부모님의 삶이

어린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된 농사와 함께

공장 근로자로 일하시는 이유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장에서, 공사장에서

주말도 없이 일을 해야지만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N잡러의 삶을 사셨던 것이었다.

그런 팍팍한 삶이 상당기간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10살 어린아이는 40대 중반이 되었고

아버지는 칠순을 훌쩍 넘어서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아버지는

더 이상 소작농이 아니라는 것이다.

넓지는 않지만 혼자 농사짓기에는 충분한

흙냄새 나는 땅의 주인이 되셨다.

그토록 꿈꾸던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

농사일은 여전히 고되고 끝이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엿한 땅의 주인이 되신 것이다.


지난 주말. 우연히 예전 소작하던 그곳을 지났다.

이제는 논과 밭이 사라진 그곳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어린 시절 자본주의라는 것을 알게 해 줬던 4:6제.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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