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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17. 2023

설거지의 신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추억

2002년 12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제선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 나리타를 경유해서 호주 케언즈로 향하는 긴 비행.

내가 가진 것은 옷가지, 침낭으로 채워진 무거운 배낭과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로 모은 현금 100만 원.

이것이 호주살이 1년을 위한 전부였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현지에서 일을 하면서

호주 체험 하며 1년을 버티자는 계획.

도착하자마자 하루 10불 정도 하는  숙소를 구하고

도심으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이력서 가지고 찾아간 곳.

작은 사무실에도 찾아갔고, 마트에도 찾아갔지만

단기적으로 일을 하고 떠나는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을 위한 일자리는 전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식당에서의 kitchen hand.

설거지와 주방 보조 일이었다.

대형 쇼핑몰에서의 일본 회전 초밥집과 4성급 호텔 뷔페.

그곳을 찾으니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출근 첫날.
하루에 7~8시간 동안 식당 설거지를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아무 말 없이 음식물 찌꺼기와의 전쟁.

손으로 기계로 접시를 닦고 또 닦았다.

그러다 지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면

저 멀리 누군가가 내게 외쳤다.


"Keep going on, keep going on!"


계속 접시를 닦으라고 다그쳤다.

눈치를 보면도 또 닦고 닦았다.

설거지용 호스의 수압이 강해서

음식물 찌꺼기가 얼굴이 튀는 경우도 있었고

안경에 스파게티면이나 밥풀 붙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잠시 휴식시간이면 1분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고

점심시간이면 뷔페의 남은 음식을 눈치보며  가져다가 어두운 주방의 구석에 앉아서 식사를 하곤 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아픔.

나는 그것을 호주의 식당 한구석에서 체험했다.


눈물이 나왔다.

서럽고 또 서러웠다.

넉넉지 않은 나의 환경.

돈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서러웠다.

친구들은 어학연수를 간다고 자랑하듯 얘기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할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와서

일해서 버티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주일 정도 하루 종일 설거지를 계속하면서

마음 한 켠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10일 정도 일하고 나는 식당을 그만두었다.


며칠 정도 호주여행 디니며 마음을 추스렸다.

언제나 그렇듯 돈이 문제였다.

잔고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시 취업 전선에 나섰다.

호텔 뷔페에서 초밥집, 한국 식당. 동남아 식당.

2달 정도 열심히 일하니

200만 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1달 어학원을 등록해서 공부도 했다.


그리고 다시 도시를 옮겨서 식당일 또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는 설거지의 신이 되었다.

미치도록 설거지를 잘하는 신과 같은 존재.

설거지의 전문가가 된 것이었다.

일하고 여행 다니고 또 일하고 여행 다니면서

나는 계획했던 1년을 마무리했다.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 1년.

처음으로 하는 외국 체험.

나는 설거지의 신이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내 삶의 특별한 전환점이자,

나란 존재의 미약함과 겸손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수북하게 쌓인 설거지 그릇들.

오늘은 문뜩 호주에서의 그날을 생각하며

아내를 대신해 설거지 신의 능력을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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