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만의 귀향
오대산으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잔잔한 감동이었다.
조선왕조 기나긴 역사를 담은 두툼한 실록과
왕실 행사를 기록한 화려한 의궤.
수백 년 긴 시간의 흔적이 담긴 실록과 의궤가
110여 년 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원래의 자리인 오대산으로 돌아온 것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슬픔과 기쁨이 공존했다.
살짝 눈물이 나왔고 뭉클한 감동도 느껴졌다.
12일 개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동해안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대산 월정사 아래에서 우연히 들린 곳이다.
이곳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조선왕조실록의 이야기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왕실의 역사를 보관하는
사고(史庫) 대부분이 불타면서
깊은 산속에 4개의 사고(오대산,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사고)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제 침략기 시기에
일본은 이들 4개 사고에 보관된 실록과 의궤를
서울로 모아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1913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전체를 일본의 동경 대학으로 가져간다.
불행하게도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오대산에서 가져온 실록과 의궤 대부분이
화재로 불타버린다.
우리의 긴 역사 기록물이 남의 땅에서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그 후 몇 권 남지 않은 실록과 의궤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일본의 대학과 박물관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본이 야기한 임진왜란과 제국주의 침탈 등
민족사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는
2000년대부터 시작된
환수운동을 통해 힘들게
다시 우리나라도 돌아온다.
하지만 상당 수가 소실되거나 분실되어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75권, 의궤는 82권만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2023년 11월.
드디어 110년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오대산사고의 실록과 의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었기에
우리의 역사와 시간을 담은 기록물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100여 년을 방황했다.
이제 원래의 그 자리를 찾은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보면서
앞으로는 그런 민족의 비극이 없기를 기원했다.
110년 만의 귀향.
잔잔한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