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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Oct 05. 2024

오전/오후반과 오징어 놀이

그 시절 진정한 남자들만의 놀이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기억이 된다. 갑자기 학교의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오전/오후반으로 수업을 나눠서 진행을 했다. 학교 건물을 짓는 1년 정도였지만, 달은 오전에 수업을 하고, 달은 오후에 수업을 했다. 불규칙한 수업 시간 때문에 우리들에게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전반일 때는 오후반 수업을 한 것처럼 느지막하게 집으로 들어갔고, 오후반일 때는 오전에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운동장이나 마당을 뛰어다닌 후에 교실로 들어갔다.


오전에 시간이 남을 때는 주로 마을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우리 마을에는 운동장이 없었기에 작은 마당에 모여서 어린 시절부터 즐기던 놀이를 즐겼다. 우리 집 주변에는 여자 친구들 밖에 없었기에 그 친구들과 오래전부터 같이 했던 사방치기나 땅따먹기. 치기 등 소박한 개인 놀이들을 즐겼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지면서 이런 놀이들은 재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남녀석들끼리 하는 조금 동적인 놀이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형들이 많은 윗동네를 찾았다. 형들이 즐기는 것은 축구. 제대로 된 운동장은 없었지만 추수가 모두 끝나고 긴 겨울을 버틴 논바닥은 최고의 축구장이었다. 바닥은 어느 정도 평단하고 단단하게 굳어서 공을 차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인원수가 부족했기에 서너 명이 한 팀이 되어서 축구를 했다. 특히 봄이 시작되면 푸른 잡초들이 자라면서 멋진 잔디구장 못지않을 정도였다. 다만 옷에 풀물이 들어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자주 혼이 났던 기억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리들만의 놀이 시간은 이어졌다.

오후반 수업을 기다리면서, 또는 오전반 수업을 마친 후에 즐기던 놀이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오징어 놀이였다. 오후 수업을 위해 학교로 도착하는 친구들. 그 녀석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하면 드디어 게임이 시작된다. 운동장 모퉁이에 오징어처럼 생긴 금을 긋고, 두 개의 팀으로 사람을 나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공격과 수비를 정한다. 공격하는 친구들은 밖에서, 수비하는 친구들은 안에서 공격을 막는다. 밖에는 모두가 한 발로 뛰어야 하고 안에서 수비하는 친구들은 오징어 구역 안에서는 두 발로 다닐 수 있다. 공격하는 친구들을 잡아끌어서 안으로 당기면 공격하는 사람이 죽는다. 공격하는 친구들은 오징어 중간 부분을 건너면 두 다리로 다닐 수 있고 오징어 안쪽을 공격할 수 있다. 서로 당기고 밀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이렇게 게임이 이어진다. 때로는 땅에 부딪쳐서 살이 까지기도 하고, 옷을 강하게 당겨서 찢어지기도 했다. 이런 것이 진정한 남자 녀석들의 게임이었다.


여기에서 에너지 소비를 못하면 우리는 말뚝박기로 종목을 전환했다. 역시 두 팀으로 나눠서 수비하는 팀은 한 사람이 나무나 담에 기대고 나머지는 바짓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박고 말을 만든다.  공격팀은 그 위를 올라탄다. 전력을 다해서 달려와서 점프를 한다. 모두가 올라타기 전에 넘어지면 공격이 성공한다. 그리고 가위바위보. 승자가 공격을 한다. 말뚝박기는 누군가가 다치거나 울어야만, 또는 서로가 싸워야만 끝나는 게임이었다.  


그렇게 땀으로 흠뻑 젖은 후에 우리 친구들은 교실로 들어가서 오후반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놀이를 즐기면서 우리 모두는 초등학교 한 학년을 보냈다. 내 생애 가장 열심히 놀았던 시간들이었다. 이런 놀이 덕분에 나의 일기장은 언제나 내용이 풍족했다. 일기장 검사는 하시는 선생님은 항상 '참 잘 썼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주셨다. 어찌 보면 지금의 글솜씨가 그때 놀이를 담은 일기장의 유산이 아닐까 라는 생각. 가끔씩은 그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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