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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Oct 13. 2024

우리 식구 '송아지'

송아지와 함께 보냈던 4학년 어느 날.

어린 시절, 소(牛)는 부의 상징이었다.

소가 몇 마리 있냐에 따라서 그 집안의 부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30~40년 전이었지만 힘 좋은 소 한 마리가 우시장에서 100만 원 이상(당시 우리 아버지 1년 연봉)으로 팔렸다. 아무나 살 수 있는 그런 가축이 아니었다. 특히 암소가 송아지라도 낳으면 수십만 원이 새롭게 생기는 자산 증대 효과가 있기에 암소는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농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농번기에는 소를 이용하여 밭이나 논을 갈았다. 소를 빌리기 위해서는 소 주인들에게 대여료를 줘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소가 서너 마리 있으면 그 집은 틀림없는 부잣집이었다. 평소에는 소를 통해서 대여료를 받고 농사도 편하게 지으며, 아이들이 대학교를 갈 때면 현금화해서 등록금을 내기도 했다. 소는 농촌 사회에서 없어는 안될 큰 자산이었다.


1986년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날 따라 아버지가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지게와 농기구들을 보관하던 헛간을 여기저기 수선하고 계셨다. 아버지에게 뭐 하냐고 물으니 우리 집도 송아지 한 마리를 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헛간을 작은 축사로 바꾸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송아지가? 이제 우리 집도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식구가 생긴다는 설레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


다음 날, 큰 용달차가 우리 집 앞에 도착했고 송아지 한 마리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우시장에서 40여만 원에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왔다고 말씀하셨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송아지였다. 보송보송한 누런 털을 가진 눈망울이 매력적이고 순하게 생긴 얼굴. 이제 우리의 새로운 식구가 된 녀석을 누렁이라고 불렀다. 


그날부터 우리는 정성스럽게 누렁이를 키웠다.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송아지의 식사 준비. 추수가 끝나고 남은 볏짚이 그 녀석의 주식이었다. 작두를 꺼내서 짚단을 잘게 잘게 자르고 그것에 물을 넣고 끓인 후에 다시 식혀서 여물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송아지였고, 어미소가 없어서였을까 상당히 주변을 경계했다. 처음 1주일간은 여물을 먹이는 것도 녹녹지 않았다. 정말 배고플 때만 조금씩 먹고 물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정성스럽게 그 녀석을 돌보았다. 먹을거리뿐만 아니고, 털도 잘 골라주고, 아버지는 축사 청소를 매일매일 깔끔하게 해 주셨다. 몇 주가 지나면서 누렁이의 태도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여물도 잘 먹고 새로운 공간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여름이 되고 이제는 외양간이 아닌 밖으로 끌고 나가서 풀을 먹이는 시점이 다가왔다. 처음 몇 번은 아버지가 누렁이를 끌고 나가서 밭이나 논 근처에 묶어두고 풀을 뜯도록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른 일이 바빠지면서 송아지 관리는 할아버지가 대부분 맡아하셨다. 여느 때와 같이 소를 끌고 나가서 집 근처 감나무 밭에 잠시 묶어둔 송아지. 그날은 누렁이가 궁금했던 나와 동생들이 그곳을 찾았다. 반가운 마음에 어린 동생이 누렁이를 더듬으려는 순간, 그 녀석이 짜증이 난 듯한 모습으로 뒷발을 들어 올렸다. 동생이 살포시 팔을 맞은 듯했다. 그 순간 어린 동생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그 녀석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가까이로 갔는데 나에게 역시 발로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따라서 누렁이 녀석이 뭔가 짜증이 나 있었다. 우리말을 듣지 않고 다른 쪽으로 힘을 쓰면서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먹였던 여물 때문인지 제법 힘도 좋아진 상태였다.


저 멀리에 계신 할아버지를 크게 불렀다.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냐며 달려오셨다. 누렁이가 짜증을 내면서 우리를 발로 찼다고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는 오늘은 안 되겠다며 다시 누렁이의 고삐를 쥐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몸을 마구마구 요동치더니 할아버지가 잡고 있는 고삐를 당겨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송아지의 첫 탈출이었다. 여기저기 날뛰는 송아지를 잡기 위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섰다. 여기저기를 쫓고 가로막고 다시 가로막고. 엄청난 추격전이 일어났다.  십여분 동안 동네 한 바퀴를 돈 듯했다. 그렇게 추격전을 하다가 드디어 동네 이장님과 할아버지가 송아지를 잡아서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모두가 땀이 흠뻑 젖은 지친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아슬아슬한 동거가 지속되었다. 누렁이는 스트레스가 늘어났는지 외양간을 들이박고 밖으로 나와서도 여기저기로 날뛰기 시작했고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매일매일 할아버지와 그 녀석과의 힘겨루기가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그 녀석의 발길질 때문에 할아버지가 다치는 일이 또 발생되었다. 집안 어르신 모두가 짜증이 나신 상태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소를 키우는 것은 어렵다면서 다시 우시장에 이 녀석을 팔 것이라고 했다. 주말에 우리 누렁이는 다시 우시장으로 떠났다.


우리 집에 누렁이가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누렁이는 우리 집을 다시 떠났다. 집 안에는 뭔가 큰 폭풍이 지나간 듯했다. 그리고 텅 빈 누렁이의 외양간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길지 않았던 달간의 누렁이와의 동거.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특별한 추억의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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