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산(魯泰山)은 높이 141m로 천안 시가지의 북쪽에 위치한다. 산 중턱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고, 산세가 공자가 태어난 중국 노(魯) 나라의 태산(泰山)과 같다 하여 노태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부근에서 높아 보이므로 노피산이라고도 불렀다고도 한다. 둘레에는 선사시대 대규모 집단이 살았던 선사유적이 발견되었고, 두정동과 백석동에 그 일부가 원형 보전되어 있다. (자료: 디저털천안문화대전)
노태산은 우리 동네 어린이들의 자연 놀이터였다. 특히 추운 겨울이 되면 동네 형들과 함께 나는 노태산으로 향했다. 우리만의 특별한 비밀공간이 있어서였다. 사실 노태산은 오래전부터 금맥이 유명했고, 일제 침략기에는 금을 캐기 위한 금광이 많았다고 전해졌다. 그중 가장 큰 동굴은 개인 농장 사유지로,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 용도로 활용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금광들은 입구가 무너지면서 그 흔적이 사라졌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형 하나가 사라졌던 동굴 입구를 발견한 것이었다. 등산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린이 하나가 겨우 기어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입구였다. 바로 그곳이 우리의 비밀 공간이었다. 조금은 위험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호기심과 탐험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추운 겨울바람을 막을 수 있기에 안쪽에서 작은 모닥불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놀이터가 아닐 수 없었다.
여름에는 수풀이 우거져서 입구를 찾기 어렵고, 어떠한 동물(너구리나 뱀 등)이 숨어있을 줄 몰라서 쉽게 출입이 어려웠지만, 겨울이 되면 그런 걱정이 별로 없었기에 우리는 그곳을 다시 찾았다. 특히 그 해 겨울 처음으로 그곳을 찾을 때는 누가 겁이 적은 지를 확인하는 담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한 번에 2명씩 동굴 안쪽으로 가서 마지막에 남겨둔 무엇인가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1986년 겨울, 나는 친구와 함께 첫 번째로 그 담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입구에서는 흙이 입에 닿을 정도로 기어서 들어갔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은 넓어졌다. 빛이 하나 없는 깜깜한 곳이었기에 집에서 가져온 촛불을 켰다. 그리고 몇 걸음을 옮기는 순간, 저 멀리서 뭔가 날아왔다. 우리 둘은 미친 듯 소리를 지르고 곧바로 밖으로 달출을 했다. 정신이 없었다. 너무나 무서웠기에.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그것은 박쥐였다. 나와 친구는 도전을 포기하고 형들에게 첫 순서를 넘겼다.
다음으로 동네에서 제일 용감한 6학년 형들 2명이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동굴 안쪽에서 "잡아 잡아"라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동굴 밖으로 뛰어나왔다. 바로 오소리였다. 휙 하고 동굴을 빠져나와서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밖에서 기다리던 우리 모두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너~~ 무 무서웠다.
형들이 좁은 동굴 입구를 기어서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밖에 있으면서 오소리를 못 잡은 우리 대여섯 명을 나무랐다. 사실 초보자인 우리들이 잡기에 오소리는 너무나 재빠른 녀석이었다. 형들에게 모두가 무섭다고 이야기를 하니 이번에는 다 같이 동굴에 들어가자는 형님들의 말씀. 8명이 한꺼번에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걱정이 없었다. 주변에 형들이 많았기에 나는 든든했다. 천천히 걸어서 들어가니 동굴의 길이는 30m쯤 되는 듯했다. 여기저기에 곡괭이 자국이나 폭탄을 심은 자국이 남아있었고, 동물들의 털도 가끔 보였다. 동굴 마지막에는 연장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남겨 놓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동굴을 둘러보고 동굴 입구 쪽으로 와서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희미한 불빛에 서로의 얼굴을 비춰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 모두가 진정한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 어른이라는 생각들 정도였다.
그 이후, 형들이 중학교에 가고 친구 몇몇이 전학을 가면서 동굴 탐험은 우리 기억에서 잊혀갔다. 몇 년 후에는 다시 동굴 입구가 무너지면서 그곳의 흔적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동굴 탐험. 내가 도전했던 과제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 아니었을까 한다. 가끔씩은 낭만 가득했던 그때가 그립다. 동굴 속에서 만난 박쥐와 오소리, 모닥불에 땅콩을 구워먹던 그날의 추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