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매와 개구리
어미 새가 되었던 그날의 추억
1987년 봄이었다.
겨울 내 쌓아두었던 장작이 모두 떨어져서 아버지는 나무를 하기 위해서 지게를 지고 산으로 향하셨다. 오후 늦게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장작용 나무를 지게 가득히 지고 돌아오셨다. 그리고 조용히 나와 동생들을 불러셔 뭔가를 보여주셨다. 주머니에서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짹짹 거리는 작은 새 3마리를 꺼내주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어디서 가져온 새냐?"라고 여쭈어보았다.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둥지를 잃고 낙엽이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며, "근처를 아무리 찾아봐도 어미 새나 둥지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그래서 "어두워져서 들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라고 전해주셨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들에게 "어느 정도 움직일 정도가 되면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주면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바로 그 녀석들이 머물 수 있도록 작은 새장 하나를 만들어주셨다. 뚝딱뚝딱 나무와 철망으로 단단한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포근한 지푸라기를 깔아서 근사한 둥지를 만들어주셨다. 나와 동생들은 두 손 위에 그 새끼들을 올려서 둥지에 넣었다. 녀석들은 짹짹 울으며 우리 쪽으로 입을 벌렸다. 많이 배고픈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삽을 가지고 잠시 밖으로 나가시더니 근처에서 지렁이와 작은 벌레 등을 잡아서 아기 새들에게 전해주셨다. 녀석들은 마치 어미새가 가져주는 듯한 모습으로 입을 크게 벌려서 그 벌레들을 먹었다. 우리가 어미새 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다음날부터 새들에게 먹이를 전해주는 것은 나와 동생들의 몫이 되었다. 하교를 하면 논이나 밭으로 가서 벌레를 구해서 녀석들의 근사한(?) 음식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마음 아픈 일이 하나 벌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작고 약한 새끼 한 마리가 움직임이 없이 누워있던 것이었다. 큰 녀석들에게 번번이 먹이를 빼앗긴 막내 녀석이었다. 다른 두 녀석들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몸도 약했기 때문에 일찍 하늘나라로 떠난 것 같았다. 그래도 몇 달간 함께 했던 막내 녀석이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 한 켠이 먹먹해졌다. 그날 나와 동생들은 막내 녀석을 근처 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마리였다. 우리는 또 한 번 아픈 이별을 하지 않기 위해서 두 녀석들을 키우기 위해 더욱 열심히 벌레사냥을 다녔다. 봄이 지나서 여름이 되니 녀석들의 모습이 쑥쑥 꺼져나갔다. 먹는 먹이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서서히 털갈이가 시작되었다. 털갈이하는 그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분명 작은 새가 아니었다. 맹금류가 분명했다. 할아버지에게 어떤 새냐고 물으니 "참매 같다"라고 우리에게 얘기해 주었다. 매라는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들을 제대로 키워서 유목민들처럼 사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멋진 사냥매를 만들기 위해서 더욱 사랑스럽게 아기새들을 돌봐주었다. 여름부터는 벌레가 아닌 개구리를 녀석들의 먹이로 제공했다. 근처 논으로 달려가서 "개구리 동동 파리 동동" 하면서 개구리를 잡았다. 그 개구리를 사망선고(?)시킨 후에 둥지에 넣어주었다. 큰 녀석들은 마치 사냥을 한 듯한 표정으로 개구리 음식을 즐겼다.
가을이 되니, 녀석들의 덩치가 더욱 커져버렸다. 이제는 슬슬 날갯짓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둥지를 키우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열심히 개구리를 잡았지만 언제나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둥지에 있던 두 마리의 새끼 매들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급하게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물으니 숲으로 다시 돌려보냈다는 것이었다. 이제 몸짓이 너무 커서 집에서 키우기 어려워 보였고, 풍족한 가을이기에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도 된다는 것. 그렇게 1987년 아기 매와 함께 했던 6개월이 지나가 버렸다. 함께 사냥을 꿈꾸던 멋진 사냥매를 기대했지만, 그건 단지 상상에 만족해야만 했다.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 하늘을 멋지게 가르며 날고 있는 매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