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하 상점 이야기
머나먼 시공간 속 해오라기 친구
아저씨 메모장엔 신제품 한가득
영원히 멍들지 않는 복숭아
만져봐도 괜찮아 time to say bye
소행성 샘물은 4개들이 Yellow pink plain green
Oh take your pick baby
바람이 좋았던 집 앞 은하 상점
없는 게 없었던 나의 은하 상점
길 가다 마주쳐도 인사 따윈 마요
때로는 음반 가게 때로는 문구점
아무도 기억을 못 하는 그곳
공일오비의 노래 '은하상점' 중의 일부다. 아주 오래전 학교 앞에 있었던 문방구 '은하상점'을 표현한 노래다.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은하 상점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는 3개의 작은 문방구가 있었다. 모두가 간판은 없는 허름한 가게들이었다. 정문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첫 번째 가게는 연세가 있으니 어르신이 운영하셨다. 가게가 문을 열어 들어가야 하는 조금은 폐쇄적인 구조였고, 새로 나온 딱지나 장난감들이 많이 부족했다. 뭔가 트렌드에 뒤쳐진다고 할까? 반면에 두 번째 가게는 아버지 또래의 젊은 부부가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기에 트렌드에 가장 빨랐다. 뭐든 새로운 것은 그 집에서 구할 수 있었다. 없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갖쳐줘 있었고 문구 안쪽에서는 1984년 세상에 새롭게 등장한 전자게임기 3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세 번째는 가장 젊은 부부가 주인이셨지만, 물건이 조금 부족하고 정문에서 거리가 가장 멀었기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이 이용했던 가게는 바로 두 번째 가게였다.
두 번째 가게는 나의 오후 놀이터였다. 말우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한적한 오후에는 1~2시간에 1대뿐이었기에 학교를 마친 후에 항상 두 번째 가게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다. 문방구 안에서 이런저런 신기한 물품들을 구경하고 근처 친구들이 즐기는 오락이나 뽑기 등을 보면서 버스가 올 시간을 기다렸다. 매일 같이 어머니가 주신 100원으로 맛있게 보이는 10원, 20원, 50원짜리 저렴한 불량 식품들을 사 먹기도 했고, 50원짜리 뽑기로 한 방에 대박 상품을 노리기도 했다. 한판에 50원인 뽑기의 1등은 멋진 물총이나 고급 장난감이었다. 즐거운 상상을 하며 항상 50원으로는 뽑기를 즐겼다. 결론은 항상 꽝이었긴 했지만. 가끔 운동장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주으면 가게에서 파는 어묵이 하나 들은 떡볶이를 먹으며 기분 좋게 차를 기다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을까? 한적한 오후 시간에 아저씨와 나는 문방구에 홀로 남은 경우가 자주 있었다. 수업이 늘어났고, 오전반과 오후반이 나눠면서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저씨가 나를 찾았다. 장난기스러운 말투로 사는 곳과 이름을 물어보셨다. 그 이후부터 아저씨는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너무나 내성적인 나에게 학교에서 이름을 불러주시는 어른은 아저씨가 거의 유일했다. (선생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불러주셨으니) 그러면서 나는 두 번째 아저씨와 친해질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오후에는 아저씨가 나의 말 벗이 되어주셨고 학교 이야기며, 장난감 이야기들을 매일매일 나누었다.
가끔씩은 내게 선물도 해주셨다. 시골에서 통학을 하기에 우리 집 환경이 넉넉지 않다고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가지고 싶은 작은 장난감이나 작은 노트, 필기구 등을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때로는 오징어 굽는 모습을 보며 침을 삼키는 나에게 작은 오징어를 한 마리 구워주시기도 했고, 회수권을 잊어버렸을 때는 대신 버스비를 빌려주시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게 너무나 소중하신 분이었다. 덕분에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넉넉하고 포근한 기억이 가득하다.
궁금하고 그립다. 지금 두 번째 아저씨를 무엇을 하고 계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