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어린 시절 불조심 표어로 자주 사용했던 문장이다. 내 삶에 있어서 큰 교훈을 주었던 표어이기도 하다.
내게 불 다루는 법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라이터가 흔하지 않았기에 할아버지는 휴지나 쓰레기를 태우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성냥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불 붙이는 것이 서툴러서 성냥 몇 개를 부러뜨려서 못쓰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차차 익숙해지면서 쉽게 성냥을 이용해서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나는 석유곤로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아궁이 안에 종이나 낙엽을 놓고 불을 붙이기도 했다.
가끔씩은 성냥을 몰려 숨기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불장난을 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불을 가지고 하는 놀이는 추위를 녹이기 충분했고, 뭔가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불을 지펴서 땅콩이나 콩,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는 것이 재미있었고, 물론 살짝 스릴도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사실 불장난이 최고의 놀이였다. 그 불장난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 아찔했던 추억이 많았다.
한 번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뒷 산에 올라서 산 정상을 전체를 태운 적이 있었다. 그 산 정상에는 6.25 전쟁 때 사용했던 콘크리트 구조물과 참호가 있었다. 가끔씩 아이들이 모여서 총싸움이나 전쟁놀이를 했다. 그날은 날씨가 추워서 근처의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지폈는데, 바람이 불어서 정상 근처를 다 태웠다. 다행인 것은 참모 주위를 모래가 둘러싸고 있었고, 눈도 많이 내렸기에 불이 산 아래로 번지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집을 태울 뻔했던 기억이 있었다. 어린 동생과 함께 쥐포를 구워 먹으면서 일이 생겼다.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아궁이 안에서 쥐포를 구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얼마가 지났을까? 저 멀리서 옆 집 친구가 나를 급하게 찾고 있었다. 우리 집에 불이 났다는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집 근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들어가 보니 이미 주변 어르신들이 와서 물을 뿌리면서 불을 끄고 계셨다. 확인해 보니 작은 방 옆의 창고 안이 검게 타고 그을려 있었다. 이번에도 운이 따랐다. 다행히 큰 나무 합판이 불을 덮고 있었기에 방이나 지붕으로 큰 불이 번지지 않았고 어르신들이 빨리 발견하셔서 작은 불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저 멀리서 동생이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서 이유를 물으니 쥐포가 너무 먹고 싶어서 내가 가르쳐준 방법대로 성냥으로 불을 지폈고 그 불이 옆으로 번졌다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나의 잘못이었다.
세 번째, 가장 아찔했던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인 1987년 겨울의 일이었다. 산 아래의 밭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땅콩을 구워 먹고, 불을 가지고 쓰레기 등을 태우며 장난을 쳤다. 그때 서울에서 전학을 온 한 녀석이 거센 바람을 등지고 불씨를 마른 낙엽 속에 던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바람을 타고 어른 키 정도로 옮겨 붙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불이 펴졌다. 그 장면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을 정도다. 주위에서 함께 놀던 6학년 형들 1명과 5학년인 나와 그 친구, 3~4학년 동생 서너 명이 불길을 잡으려고 했지만 불씨는 바람을 타고 임도를 넘어 야산으로 옮겨 붙었다. 이젠 진정한 산불이 되어버렸다. 너무 거세진 불길 때문인지 우리 모두는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불을 끄다가 말고 한두 명씩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마을 사이렌이 울렸다. 우선 아랫동네 어르신들이 달려오셨다.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수십 명의 어르신들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불을 끄기 위한 각종 농기구들을 들고 마을에서 달려오시고 있었다. 우리 친구들 모두는 불을 끄다가 그 장면을 보고 어른들께 혼날까 무서워서 각자 집으로 도망을 쳤다.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는 길에 멀리서 소방차 소리까지 들렸다. 잡혀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혼이 빠진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뭔가 의심이 났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방금 전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털어놓았다. 할머니는 급하게 이장님을 찾아 나섰다. 나는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혹시나 감옥에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살포시 떨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행히 1시간 만에 산불이 꺼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을 어르신들과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산불이 잡힌 것이었다. 그날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친구들이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10명의 친구들은 이장님을 따라서 조용히 산주인 댁을 찾았다.
다행히도 산 주인 어르신은 우리들을 용서해 주기로 하시고 앞으로는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타일러주셨다. 소방서 관계자와 함께 경찰까지 왔었지만 시골의 훈훈한 인심으로 꿀밤 한 방으로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산을 찾았다.
산의 절반 정도가 검게 타버렸고 묘지도 검게 타버린 곳이 일부 보였다. 우리의 작은 실수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지는 몰랐다. 그날 이후 우리들은 더 이상 불장난을 하지 않았다. 불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산불의 추억. 내 어린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아픈 추억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