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주, 온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형형색색 화려한 옷을 입은 가을을 시기하는 듯, 심술궂고 차가운 겨울은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눈을 내려보냈고, 가을의 끝에서 온 세상은 하얗게 물들어 버렸다.
눈 쌓인 백색의 겨울 숲은 순수함과 낭만이 가득하지만 그곳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탐방객들을 위해서 제설 작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휴양림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 구불구불 좁은 산길이기에 언제든 미끄럼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도로 다수가 계곡을 끼고 이어지기에 조금만 방심해도 겨울철에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많은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올해 자연휴양림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지막 여행지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택한 곳이 바로 음성 수레의산 자연휴양림과 괴산의 조령산 자연휴양림.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가는 도중에 잠시 수레의 산에 들려서 휴양림을 둘러볼 계획을 하고, 주말 아침 차에 올랐다.
수레의산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과 충청북도 충주를 잇는 국도 3호선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일죽 IC에서 빠져나와서 38번과 3번 국도를 달렸다. 가는 길은 겨울 왕국이 따로 없었다. 며칠 전 내린 폭설에, 금요일 밤 소복이 내린 눈이 합쳐지면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특히 남한강이나 작은 호수 근처를 지날 때면 눈 위로 하얀 아침 안개가 펼쳐지면서 한 장의 동양화 같은 또 하나의 장관을 자아내고 있었다. 길게 뻗은 3번 국도를 홀로 달리다가 내비게이션 안내에 맞춰서 국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약 10분 정도 작은 시골길을 달렸다. 다행인 것은 도로 제설 작업이 너무나 완벽해서 운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정확히 출발 1시간 20분 만에 목적지인 수레의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레의 산에 밤새 내린 하얀 눈 수레의산은 높이 679m로 충북 음성에 위치한 산이다. 이름이 특이하여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몇 가지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는 산의 상징인 상여바위가 멀리서 보면 하늘로 오르는 상여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차(車)의 산’이라는 뜻으로 ‘차의산(車依山)’이라고 불렸고, 우리말로 수레의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한 향토문화사전에는 음성군 차곡리에 있는 수레울마을이 있는데 마을의 이름인 수레울에서 유래되었다고 적혀있다. 이런 이유로 산의 이름이 수레의산으로 불리는 듯했다.
또한 이 산에는 특별한 전설이 있다. 능선 바로 밑에는 ‘여기소’라는 연못이 있는데, 조선시대 문신인 권근의 묘소와 관련되는 전설이 얽혀 있다. 1409년(태종 9) 대제학을 지낸 권근이 죽자 유명한 지관들이 이 근처에 묘 자리를 골랐다. 그 이후 한 늙은 스님이 산세를 두루 살피더니 산소자리에서 물이 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면서 정상 샘터에 연못을 파면 묘 자리에 물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였고 시킨 대로 하였더니 정말 그대로 되었다고. 극심한 가뭄이 들 때 이곳에 올라와 기우제를 올리면 해갈비가 온다고 한다.
수레의산 자연휴양림 입구 (관리사무소) 겨울 왕국이 된 자연휴양림 수레의산 안내도 신비한 전설 가득한 수레의산 휴양림 입구로 들어섰다. 넓게 펼쳐진 관리사무소 앞에 차량을 주차하고 수레의산 휴양림 산책을 나섰다. 며칠간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숙박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눈 때문에 취소를 한 듯했다. 우선 안내도를 살폈다. 수레의산 자연휴양림은 모두 4개의 숲 속의 집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관리 사무소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A와 B지구, 오른쪽에는 C와 D지구가 있었다.
가장 왼쪽으로 향하니 가장 안쪽에 있는 4개의 숲 속의 집이 보였다. 제갈채와 산부채, 한련화와 당창포 숙소였다. 소복이 하얀 눈 속 자리 잡은 모습이 마치 북유럽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래전 스웨덴에 겨울 출장을 간 기억이 있는데 그때 만난 눈 속의 원두막처럼 느껴졌다. 눈이 가득한 겨울에도 낭만 가득한 풍경을 자아내지만 겨울이 지나서 봄이 되면 주변에 철쭉과 진달래가 가득하다고. 참나무 향 가득한 맑은 공기와 풀내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숲 속의 집들이었다. 특히 최근에 지어진 B지구의 근사한 트리하우스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경쟁률이 치열하겠지만 대기 예약이라도 해서 하룻밤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수레의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있었다. 가는 길에는 아이들을 위한 숲 속 교실과 천문대 등이 있었다. 등산 코스는 총 4개의 코스가 있는데, 1.2km인 A코스부터 2.4km인 D코스까지 자신의 체력에 맞춰서 선택하면 된다. 특히 수레의산 정상에는 근심을 떠나보낸다는 의미의 정자 '수리정'이 있어서 등산하며 흘린 땀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히기에 최고의 장소로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제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 속의 집 C와 D지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옹기종기 적절한 거리를 두고 모두 7채의 숲 속의 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경사가 살포시 이어지는 눈 길이기에 살얼음이 얼어서 조금 미끄러웠다. 위쪽으로 차를 가지고 오르려고 했지만 잠시 앞바퀴가 헛돌았다. 순간 긴장! 차를 정지시키고 조심조심 후진해서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역시 겨울에는 여기저기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 멀리 평지에 있는 금잔화와 함수초 숙소가 눈에 들어와서 이번에는 그 앞으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아까 만났던 숙소들과는 다르게, 저 멀리 확 트인 산세를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숲 속의 집들이었다. 이런 눈 쌓인 겨울날 테라스에 올라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긴다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휴양림에서 바라본 충청의 산들 하얗게 물든 수레의산 자연휴양림에서 특별한 시간. 겨울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쉼의 시간이었다. 눈 덮인 숲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힐링하는 '눈멍'을 즐길 수 있었고,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로 진정한 겨울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겨울왕국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면 충청북도 음성의 수레의산 자연휴양림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