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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Dec 18. 2024

눈 쌓인 고즈넉한 옛길, 조령산 자연휴양림

솔향기 가득한 문경새재의 추억

충청도 괴산과 경상도 문경을 잇는 옛길 '문경새재'.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길을 처음 만났던 것은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홀로 가방하나 둘러매고 충청도를 출발하여 경상도, 전라도로 도보 여행을 떠나면서 인상 깊 남았던 곳이 바로 조령 옛길다. 괴산 고사리를 출발하여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산길을 걸으면서 즐겼던 나만의 시간.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차갑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취해 한없이 행복했던 그때의 억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2024년 마지막 자연휴양림 여행지로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밤새 내린 눈 때문일까? 조령산 자연휴양림에는 가을과 겨울이 공존했다.  붉게 물든 가을 단풍 위로 하얀 겨울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하늘 위에 높이 솟아오른 푸른 소나무까지 어우러지면서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이 27년만에 다시 만난 조령산 자연휴양림의 첫 느낌이었다.

조령산과 휴양림 입구

설레는 마음으로 조령산 자연휴양림 안쪽으로 들어섰다. 소나무 숲 사이로 옹기옹기 예쁜 숙소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숲 속의 집들은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고 허름하지도 않았다. 소박해 보이지만 자연과의 어울림을 담은 멋스러운 디자인이었다. 조령산을 찾은 탐방객들이 하룻밤 머물기 적당한 특별한 소라고 할까.  휴양림 안내판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곳에는 20여 개가 넘는 숲 속의 집이 입구부터 길게 아기자기 이어져 있었다.  

자연휴양림 안내

잠시 차를 주차하고 밖으로 나왔다. 숲 속의 집 1호부터 5호까지 줄지어 있는 단아한 숙소들을 사진에 담았다. 하나하나 개성이 넘쳤고 숲과 어울리는 매력적인 들이었다. 이들 숙소 바로 앞에는 휴양림에서 운영하는 매점도 있었다. 휴양림 이용객들을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와 다양한 잡화 등을 판매한다고 다. 매점 건너편으로 거대한 현대식 건물 하나가 보였다. 빌라 형식으로 여러 숙소가 모여있는 복합 휴양관. 최근에 새롭게 지은 숙소로 근사한 펜션같았다. 숲 속의 집 예약이 어렵다면 이곳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 그리고 복합휴양관 앞으로 산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계곡이 있는데, 더운 여름에는 이 계곡물을 활용하여 휴양관 앞에 물놀이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입구쪽의 숲속의 집들 (1호~5호)
복합휴양관과 계곡
숲속의 집들

다시 차에 올라서 오늘 묵을 숙소로 향했다. 우리 가족이 머물 숙소는 18호 산벚나무. 몇 주 동안 노력하여 정말 어렵게 예약을 한 숙소였다. 숲 속의 집 사이트에서 수없이 예약 버튼을 반복하며 예약을 성공한 우리 숙소. 덕분에 조령산을 마지막으로 올해의 휴양림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큰 거실 하나가 있었다. 냉장고와 텔레비전, 그리고 주방이 함께 있었다. 공간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넓었다.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을 살포시 열었다. 하얀 눈이 쌓인 넓은 테라스가 보였다. 소같으면 의자를 펴고 앉아서 숲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였지만 날씨가 추웠기에 오늘은 방에서만 머물러야 할 듯했다. 안쪽에는 또 하나의 작은 방이 있었고 화장실도 나름 깔끔하고 깨끗했다. 눈구경을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와 숙소 사진을 찍었다. 밤새 내린 눈 때문인지 고드름이 가득. 진정한 겨울의 풍광이다. 아들 녀석이 하나 따달라고 해서 긴 고드름 하나를 건넸다. 나도 긴 고드름을 하나 따서 아들 녀석과 오랜만에 고드름 칼싸움을 즐겼다. 나도 모르게 아이 미소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행복했다.  

산벚나무방
고드름 가득한 테라스
산벚나무방 내부

숙소 뒤쪽으로는 작은 산책길이 있었다. 아들 손을 꼭 잡고 그 길을 걸었다. 뽀드득뽀드득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겨울 산행하는 기분이었다. 그 길을 따라걸으니 또 다른 숲 속의 집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앞에서 본 숙소들과는 또 다른 모습. 아마도 자연휴양림을 확장하면서 하나둘씩 숙소를 지어나간 듯했다. 모두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숲 속의 집들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쌓인 산책로
휴양림의 계곡

휴양림 산책을 마치고 잠시 시간을 내서 나 홀로 조령 3 관문으로 향했다. 조령산 자연휴양림에서 조령 3 관문까지는 걸어서 약 25분이 걸린다. 숲 속의 집 뒤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표지판이 보이고 이를 따라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길은 가파르지 않았지만 그날은 눈이 내려서 조심조심 걸어서 이동. 살짝 물기가 있는데 이것이 얼면 상당히 미끄러웠다. 겨울에는 아이젠이 필요해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서 과거길을 걷는 선비 조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령을 표시하는 멋진 비석도 보였다. 조령 3 관문이 서서히 다가왔다. 한걸음, 한걸음. 이제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이다. 과거 선비들이 한양에서 과거를 보고 돌아가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선비들은 이 관문을 지나면서 고향에 다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을 듯. 나는 조령 3 관문을 지나서 잠시 경상도를 찍고 다시 발걸음을 휴양림으로 돌렸다. 날씨가 춥고 눈이 와서 그런지 위에는 오직 나만이 그 길을 오롯이 누비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혼자만의 여유. 조령 옛길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에필로그]

이 글을 마지막으로 숲 속의 집 시즌2편을 마무리합니다.

2025년 새로운 여행 이야기로 독자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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