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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숲 속에서의 하룻밤, 망경대산 자연휴양림

설원에서 맞이한 2025년의 봄

by Wynn

답답한 세상 이야기에 지쳐서 자연에서의 위로가 필요했다. '이번엔 어디를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발견한 곳은 영월의 망경대산 자연휴양림. 영월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조용한 휴양림이었다. 서울에서 넉넉 잡아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영월의 단골 한우집도 들릴 수 있기 때문에 그곳을 예약했다.


2025년 3월 8일, 올해 처음으로 자연휴양림 나들이에 나섰다. 오늘 하룻밤을 보낼 망경대산은 영월의 동쪽 석항리로 가는 길에 위치한 산으로, 산의 명칭도 단종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단종을 따라 죽은 충신 추익한이 서울을 바라본 산이라는 뜻해서 망경(望京)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망경대산 자연휴양림을 가는 길에 영월서부시장 앞에 있는 '영월동강한우'에 들렸다. 가성비 좋고 한우가 맛있어서 영월을 지날 때마다 들리는 나의 단골집. 오래간만에 육회와 한우구이를 먹었다. 역시 예전에 먹었던 그 맛 그대로. 한우가 입에서 샤르르 녹았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영월에서 만난 나만을 위한 소확행. 역시 한우는 강원도가 정답이었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영월시장에서 장을 본 후에 숲으로 향했다.

영월에서 망경대산 자연휴양림까지는 25분 정도가 걸렸다. 3월 중순이지만 며칠 전 내린 하얀 눈이 길가에 가득했다. 올해는 봄을 시샘하는 춘설이 유난히 잦았다. 때문에 오르는 길 중간중간에 녹고 얼기를 반복한 빙판길이 보였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전. 우리 자동차는 거북이처럼 스르륵 산속으로 나아갔다.

구불구불 산길을 지났다. 길이 좁았다. 혹시라도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차를 만나면 곤란한 상황. 하지만 운이 좋게도 마주 오는 차량을 만나지는 않았다. 2~3분 정도를 달리니 탁 트인 넓은 주차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관리사무소였다. 잠시 정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안내문과 방키를 받았다. 관리하시는 분이 반갑게 맞아주시면 짧게 자연휴양림 안내를 해주셨다.

우리 방은 숲향기 7동으로 가장 뒤 쪽에 위치해 있었다. 다시 차에 올라서 휴양림 안쪽으로 향했다. 물소리동 5개 숲 속의 집을 지나서 숲향기동 지구로 들어갔다. 가는 길은 크리스마스 카드 속의 하얀 세상이었다. 3월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겨울왕국이었다. 다시 겨울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다만 공기는 그리 차갑지 않았고 남쪽에서 다가오는 산뜻하고 따뜻한 봄기운이 묻어나고 있었다.

눈길을 뚫고 숲향기 7동 앞에 도착했다. 숙소 앞 쪽에는 차량 2대 정도를 주차할 공간이 있었다. 눈이 녹지 않았기에 조심조심 주차하고 짐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복층으로 이어진 방. 생각보다 방이 넓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과 냉장고. 전자레인지와 밥솥이 있었고 안쪽에는 작은 방도 있었다. 한 가족 정도가 쓰기에 적당해 보이는 숲 속의 집이었다. 2층 공간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밖에는 바비큐 시설이 객실마다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이용객들이 따뜻하게 고기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투명한 외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휴양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특별한 배려였다.

짐 정리를 하고 잠시 휴양림 산책을 나섰다.

망경대산 숲 속은 정말 고요했다.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심의 소음이 사라진 이 공간에 오직 나만이 홀로 서 있었다. 살포시 눈길을 걸으니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그 고요함을 깼다. 눈 속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 정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차갑지만 따뜻하고, 수줍지만 때론 거칠게 다가오는 산공기가 나를 감싸 앉았다. 자연과 물아일체가 된 기분이랄까. 이런 명상의 시간이 속세 삶을 사는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연에서 나를 충전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명상을 마치고 나는 개울가로 내려갔다. 망경대산 자연휴양림의 청정 계곡에는 가재와 버들치가 산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차가운 겨울이라서 그럴까? 그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녹고 따뜻한 봄이 오면 1 급수에서 볼 수 있는 그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조금은 아쉬웠다. 그렇지만 졸졸졸 얼음과 눈 아래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청결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 내가 숲 속의 집을 찾는 이유다.

계곡 옆으로 치유센터의 모습도 보였다. 만경대산 자연휴양림에서는 이용객들을 위해서 숲 속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산림치유지도사와 함께하는 족욕, 스트레스 측정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자연과 하나 되는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나처럼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날은 그냥 조용히 숲길을 걷고 싶었기에 다음으로 미루고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조용히 망경대산의 눈길을 걸었다. 30분 정도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내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 그냥 그것만으로 충분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행복했다. 일주일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내려오는 길의 발걸음도 너무나 가벼웠다.


망경대산 자연휴양림에서의 하룻밤은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봄에는 야생화가 꽃피고 여름에는 맑은 계곡을 즐길 수 있으며,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의 유혹을 즐기고 겨울에는 하얀 눈과 고요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그곳. 영월의 망경대산 자연휴양림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힐링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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