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 특별한 우승컵
주말 아침, 이른 시각부터 온 가족이 분주했다.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생활 축구인 행사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 축구 클럽이 참여한다는 것.
아침 8시까지 운동장에 도착해 달라는 코치님의 요청으로
새벽부터 짐을 챙겨서 우리 가족은 축구장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오전 9시부터 축구 경기가 시작!
오전 9시 예선 1게임을 시작으로 11시에는 예선 2게임.
8강은 오후 1시, 4강은 오후 2시, 결승은 오후 3시라는 것이었다.
상당히 많은 팀들이 대회에 참여한다는 의미였다.
내 생각에는 중간쯤에서 탈락해서 분명 12시 정도면 끝이 날 것이라고 여겼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아들 녀석도 운동 신경이 좋지 않은 나를 닮아서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한다기보다는 그냥 열심히 즐기는,
그저 그런 축구 실력이었다.
1학년 때는 많은 시간 후보로 벤치에 있어야 했고
2학년 때도 대회에서 작은 수비 역할 정도에 그쳤다.
특히 지난 대회에서는 뒷짐을 지고 최선을 다해서 뛰지 않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나서
경기가 끝난 후에 아이를 다그쳤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축구 클럽을 그만 두고 다른 운동을 알아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랬던 좋지 않았던 기억 때문인지
올해도 큰 기대 없이 행사에 참여했다.
오전 9시 첫 경기가 시작이 되었다.
아들은 역시 수비를 맡았다.
그런데 뭔가 작년과는 달랐다.
달리는 능력도 남달랐고, 패스의 정확도도 좋아졌다.
상대편 공격수와의 몸싸움에서도 뒤지지 않았다.
중앙선을 넘어오는 공을 툭툭 잘라내는 모습
깔끔하게 공격수를 막아내는 모습이 분명히 달랐다.
아들의 달라진 모습에 점점 경기에 집중이 되었다.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내고
때로는 역습을 해서 유효슈팅을 날리기도 했다.
독일 뮌헨에서 뛰고 있는 김민재의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운동장 밖에서
큰 소리를 내며 아들 녀석을 응원하고 있었다.
목이 쉴 정도로 아내와 함께 열정적인 응원을 했다.
운이 좋게도 아들이 속한 팀은 연승을 이어갔다.
그 팀에는 몇 명의 멋진 스트라이커가 있었고
강력한 콜키퍼가 있었으며,
아들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조직력도 남달랐다.
그래서 연전연승이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예선을 넘어서 8강, 4강, 결승까지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매경기 끝날 때마다 기립 박수가 나왔다.
이윽고 결승전!
아들은 또 한 번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담당했다.
그 녀석은 또래들에 비해서 키도 크고 체력도 좋았기에
반대편 공격수를 적절히 막아냈다.
공격수는 아들 때문에 살짝 짜증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달라진 아들 녀석이 대견해보였다.
하지만 5경기를 뛰면서 방전된 체력이 복병이었다.
결승 후반부에 체력 안배를 위해 다른 친구와 교체된 것.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교체된 이후부터 생겼다.
수비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상대편의 역습이 이어졌다.
3분을 남긴 시각. 팽팽한 균형을 깨는 상대편의 득점.
코치님은 부랴부랴 쉬고 있던 아들 녀석을
다시 그라운드에 불러 넣었다.
다시 수비는 안정을 되찾았다. 참으로 놀라웠다.
운이 좋겠고 끝나기 20여 초 전에
아들팀의 스트라이커가 기적 같은 동점골을 넣었다.
1:1로 경기를 마치고 승부차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극적인 승리.
우승이었다
놀라운 승리였다.
월드컵애서 국가대표팀의 승리보다 더욱 큰 기쁨이었다.
아들 녀석의 팀은 멋진 우승컵을 받았다.
나는 살포시 눈물이 나왔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1년 사이에 그렇게 발전할지는 몰랐다.
100점짜리 실력은 결코 아니었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모든 게임에서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뛰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다.
그리고 지난해 아이에게 짜증만 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나는 오늘 큰 가르침을 받았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즐기는 힘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배운 시간이었다.
10살 아이에게 또 한 번 배움을 얻었다.
노력, 최선, 즐긴다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칭찬의 소중함.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로 이것이 아이를 키우는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
행복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