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첫 학기의 기억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실업계 고등학교나 인근 지역 학교를 고민해 보라고 다시 한번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인문계를 지원한다는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천안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원했다. 1992년 당시 천안에는 천안고와 북일고, 중앙고 3개 학교가 있었는데 나는 천안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나의 고향마을 근처의 야구 명문고인 북일고등학교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은 천안 서쪽에 있는 천안고에 입학하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반에서 2등 성적으로 입학하여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나의 인문계 선택은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
입학식과 동시에 학급 반장 선거가 이어졌다. 무뚝뚝한 담임 선생님은 성적순으로 5명의 이름을 불렀다. 그 친구들을 반장 후보로 등록시켰다. 소견 발표를 하고 바로 투표를 진행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 나는 후보들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이유는 우리 반에 나의 중학교 동문들이 가장 많았다는 것. 후보자 중에서 오직 나만이 천안중학교 출신이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몰표를 얻었고 얼떨결에 1학년 3반 반장이 되었다. 소심한 내가 반장이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투표 결과는 바로 옆 반에서 마찬가지였다. 1학년 2반 반장도 천안중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출이 된 것. 그 녀석은 나의 중학교 절친이었다. 나는 1학년 3반, 나의 절친은 1학년 2반 반장에 선출되면서 우리의 고등학교의 첫날이 시작된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장이 되었다고 부모님께 특별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부모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반장이면 담임선생님도 자주 만나야 하고 학교에 가서 지원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저만 열심히 하면 돼요"라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다음 날부터 나는 책임감을 가지고 반을 이끌었다. 많이 부족했지만 정말 성실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일진이라고 불리는 몇몇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 친구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나를 잘 따라줬다. 반장을 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어느 순간부터 외향적으로 변해갔고,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시나브로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찾았다. 환경미화를 준비하는데 학급에 거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미 우리 집안 형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거울 하나 정도는 반장이 준비하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셨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건넸다. 어머니는 알았다면 고개를 끄덕이셨다.
며칠이 지났을까? 청소를 마친 후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 말씀을 듣고 교실로 돌아와 보니 친구들이 교실 뒤에서 거울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거울을 사 온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어머니가 조용히 건네주고 가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어머니를 찾았지만 어머니는 벌써 학교를 떠나신 듯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학교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상황을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일찍 공장을 조퇴를 하고 근처 유리 가게에서 거울을 사서 학교를 찾았다는 것. 내가 교실에 없어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주고 떠났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만났냐고 물으니 그냥 조용히 거울만 넘기고 학교를 나오셨다고 했다. 아무래도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셨기에 선생님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우신 듯했다. 사실 공장 근무복 차림으로 교무실을 가는 것이 어색하셨고, 혹시나 하는 촌지 부담도 있으셨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담임 선생님은 거울을 보고 내가 준비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 이후에는 그런 이유로 반장인 나를 찾지는 않으셨다. 부모님께 부담드리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부반장인 친구의 어머니가 학부모회 대표로 활동하면서 많은 경제적인 지원을 한 듯했다.
어찌 되었건 반장이 되면서 나는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교련 시간에는 멋지게 군인처럼 인원 점검 보고를 했고, 학급 회의 시간에도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을 이끌어갔다. 학급에 문제가 생기면 반 대표로 선생님의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듣기도 하고 가끔씩은 선생님의 질문 공세를 받으며 엉뚱한 대답으로 엄청나게 혼나기도 했으니. 어찌 되었건 고등학교 1학년 때 경험한 리더로서의 생활은 내 삶의 새로운 변곡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