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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이승환

나만의 오디오가 생긴 1992년.

by Wynn

1992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우리집에는 2가지 신문물(?)이 들어왔다. 바로 비디오 플레이어와 오디오. 비디오 플레이어는 고등학교에 갔으니 영화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준비해 주신 것이었고, 오디오는 중학교 내내 3년 동안 어머니에게 부탁했던 것을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드디어 사주신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기뻤다. 이제 내 방에서 카세트 테이프는 물론이고, LP판와 CD를 통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꿈이 이루어진 듯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디오가 생긴 이후로 용돈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음반을 구입했다. 용돈이 넉넉치 않아서 대부분은 길거리 손수레에서 파는 불법 테이프를 구입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환, 신해철(NEXT)의 음반은 정품으로 음반가게에서 구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산 LP판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었다. 1992년 봄, 텔레비전에서 '난 알아요'라는 음악을 들었고 처음 듣는 새롭고 강렬한 멜로디에 반해서 음반을 구입하게 되었다. 방과 후나 주말이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계속 돌려가며 가사를 외우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곤 했다. 더불어 동생이 좋아했던 이승환과 강력한 카리스마의 신해철 음반도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음악들이었다. 특히 이승환 노래는 내가 따라부르기 편하고 목소리 톤과도 너무나 잘 맞았다. 고등학교 시절 '너를 향한 마음'과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은 항상 나의 최애곡이었다. LP판이 튕길 때까지 수십, 수백번씩 들었고

열심히 노래를 따라불렀다. 싱크률이 90% 이상이 될 정도로 완벽하게 따라불렀다. 가끔은 CD와 LP 음악을 믹스해 가며 내 목소리를 넣어서 테이프에 녹음을 하기도 했다. 당시 리믹스 버전이 유행이었기에 나 또한 나만의 믹스 음악을 만들며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학기는 이렇게 음악에 빠져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체육 선생님이 반장들을 모아서 특별한 지시를 하셨다. 방학과 동시에 강원도로 수련대회를 떠난다는 것이었다. 각 반의 반장을 포함하여 학생 36명과 선생님 4명이 모두 40명이 강원도에서 2박 3일 합숙을 하면서 수련회를 한다는 것.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반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가했다. 강원도 사북이라는 곳으로 전세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작은 분교 앞마당에 반별로 텐트를 치고 2박 3일 훈련에 들어갔다. 수련회라고 했지만 군사 훈련과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구보를 하고 인적이 드문 차가운 계곡에 들어가서 아침 샤워를 했으며, 생닭이나 손질이 안된 채소로 삼시세끼 요리를 했다. 낮에는 산악 구보부터 고된 운동까지 정말 2박 3일 동안 생고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수련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날 밤에 열렸던 캠프 파이어. 그 자리에서는 나는 반 대표로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연습했던 이승환의 '너를 향한 마음'과 '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불렀는데 놀랍게도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는 것. 당시에는 절반 정도가 이승환이라는 가수를 잘 몰랐지만 아는 녀석들은 목소리가 비슷하다며 크게 호응을 해주었다. 그 반응에 나도 놀랄 정도였다. 우리 체육 선생님과 친구들은 앵콜을 외쳤고 괜한 자신감으로 톤이 조금 높은 노래를 선곡했다. 마지막 곡은 김종서의 '대답없는 너'. 이 노래는 나의 절친이던 지웅이라는 친구가 가르쳐준 노래였다. 그 녀석은 천안 청소년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친구였는데, 그 녀석과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면서 함께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무한한 자신감으로 그 노래를 불렀건만 중간이 지나서 높은 음이 나오는 구간에서 제대로 삑사리를 내고 말았다. 억지로 노래를 끝내긴 했는데 노래가 끝나니 주위 반응은 썰렁함, 대답없는 관중들이었다. 너무나 어색했던지 선생님은 훈훈한 박수로 마무리를 해주셨다.


그리고 행사의 마무리 곡은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 40명의 고등학교 1학년 용사들은 서태지의 꿈을 따라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김종서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항상 부르는 노래는 '공연의 신' 이승환의 잔잔한 발라드. 덕분에 아직까지 나는 드림팩토리의 공장장 이승환님의 열렬 팬으로서 그의 노래를 즐겨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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