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남한산성에 갇히다.

1636년 병자호란, 그리고 요즘 정치.

by Wynn
인조가 피난했던 남한산성 남문 옛길

1636년 12월.
조선의 왕은 남한산성에 갇혀있었다.

조선의 왕 인조는 피신한 남한산성 안에서

'청나라와 항전하냐, 화의 할 것이냐'를 두고
조정 대신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사이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 군대는

성 밖에서 온갖 만행을 일삼고 있었다.

왕이 떠난 도성은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모든 것은 폐허로 변했다.

하지만 왕이 있는 남한산성 안에서는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는

척화파의 주장대로

청나라의 군대에 맞서 항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신들의 힘을 받았던 척화론은

조선과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40여년 전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의

은혜와 의리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 명분을 지키기 위해
조선과 백성들의 생명과 안위는

정치인들에게 고민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성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성안의 군사들도 추위와 배고픔으로
지쳐 쓰러져가고 있었다.

결국 척화론은 청나라가 강화도를 점령하고

왕족들이 포로로 잡히면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조선의 왕은 청나라에게 항복을 한다.

인조는 청나라의 장수에게 삼전도에서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의 장면을 역사 속에 남긴다.


전쟁이 끝난 후에 약 50만 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들은 도망치다가 붙잡히면
죽임을 당하거나 발뒤꿈치를 잘렸다.
여성들은 더욱 치욕스러운 일들을 당했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세력들은
9년 전 정묘호란을 경험했지만,

왕권 유지만을 위해 외교적으로 전략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는 수많은 백성들의 죽음과
피폐해진 조선 땅이었다.

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로지 백성들만 고통이 있었을 뿐.


지금의 정치도 그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 체,

모두가 정쟁에만 빠져있다.

저 멀리 경제적, 외교적으로
거대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다시 386년 전

거센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남한산성 속에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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