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오더는 좀처럼 날 줄을 몰랐다. 엄마의 몸 상태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독박 간병은 예전보다 족히 다섯 배쯤 힘들었다. 생사의 고비를 들락날락하는 엄마를 지켜보아야 하는 안타까움, 그리고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매일매일 20시간씩 병원에서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달력이 넘어갈 때마다 서서히 무너져갔다. 몸이 힘든 건 견딜 수 있었지만 마음이 아픈 건 도무지 견디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찢어질 듯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래도 살아서 내 곁에 있음에 다시 안도했다. 가련한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 찢어졌다가 아물었다가 다시 찢기기를 반복했다. 나의 하루는 산 정상으로 열심히 밀어 올렸던 바위가 다시 까마득한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지프스 같았다. 나보다 더 힘든 엄마가 있기에 힘들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누워 있는 엄마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색하는 순간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더 아플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늘 괜찮아야 했다.
엄마가 아프고 난 이후로 주간병인인 내가 엄마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가족의 생활비를 관리하는 거였다. 다섯 가족의 보험료를 합치면 생각보다 굉장히 큰 금액이라는 것, 아파트의 관리비는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 쌀이 생각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번 달에는 제법 아껴서 여윳돈이 생겼다 싶으면 다시 엄마의 소독용품을 살 무렵이 다가왔다. 의료기 상사에 가서 한두 달치의 용품들을 구입하고 나면 20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다음 달에도 제법 아꼈다 싶으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산정특례 적용을 받아도 병원비는 늘 수백만 원을 웃돌았다.
마트에 갈 때마다 조금씩 예민해졌다. 생필품이 아닌 과일과 간식 등은 사치품으로 간주되었다. 집어 들고 머뭇거리다 결국은 내려놓기 일쑤였다. 언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할지, 언제 큰돈이 나갈지 알 수 없으나 간병 때문에 제대로 일할 수도 없는 안갯속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입원 기간에 나는 점심으로 늘 삼각김밥을 먹었다.
공방과 주문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사실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맞긴 하는데 그래도 틈틈이 내 밥값은 벌어야겠지 싶었다.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네 시간 남짓. 사실은 이 시간 동안 자는 게 맞는데 입원 전에 받아놓은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기에는 너무 죄송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집에 와서 씻고 저녁을 먹고 공방에 갔다가 밤 11시 40분 막차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언니와 교대를 했다.
아무래도 이러다간 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아서- 다음 주엔 쉬어야지, 다음 주에는 진짜 주문 안 받아야지, 당분간은 쉬어가야지 다짐을 했는데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다쳤던 허리 시술 날짜가 잡혔단다. 시술비가 200-300만 원이라고 덧붙이며 말끝을 흐렸다. 전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해서 몽롱한 눈으로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있다가 카톡을 확인했다.
잠시 말문을 닫은 채 머릿속으로 새롭게 등장한 숫자들과 이미 알고 있던 숫자들을 헤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300만 원이 나올 구멍은 없었다. 엄마의 병원비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은 생활비에 손을 댈 수는 없다. 모든 건 결국 언니와 내가 일하며 모아둔 돈으로 충당해야겠지. 인스타그램에 적었던 휴무 공지를 지웠다. 내 주제에 잠을 자긴, 이 상황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면서 쓰게 웃었다.
SK가 그사이 11연패를 해서 한화와 자웅을 겨루고 있다는 기사를 뒤늦게 확인했다. 오오 완전 거지 같은데? 역시 SK랑은 운명인가 봐.
여러모로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 2020년이었다.
비루한 몸뚱이를 애써 허공에 내맡기고서 감당해야 할 것과 차마 감당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삶은 늘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어서 발버둥 치던 지난날들이 너무 쉽게 헛되고 우스워진다.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왕 찍는 거 잘 좀 찍지 왜 이렇게 아무 데나 찍냐고 A에게 타박을 들었다.
지난 겨울 간식을 주고 떠났던 A가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에 병원 앞을 지나간다며, 교대하는 길에 잠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그 날은 다행히 오랜만에 주문이 없어 공방에 가지 않는 날이어서 저녁에 만날 수는 있었다. 코로나와 입원으로 인해 본 지 한참 됐던 터라 당연히 너무 보고 싶었지만 오래간만에 푹 잘 수 있는 날이라 순간 망설여졌다. 그래도 만나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바로 답장해 되물었다. 완전 좋지, 몇 시에 만날래?
A와 반갑게 팔짱을 끼고 병원 앞 롯데리아에 갔다. 엄마 때문에 코로나를 조심하느라 나로서는 무려 8개월 만에 간 식당이었다. 나 보겠다고 멀리까지 와 준 A가 고마워서 카드를 몰래 꺼내 들고 내가 계산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평소 절대 그냥 얻어먹지 않는 성격의 A였기에 무사히 계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내 걱정과 달리 A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가 계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 세상에, 이게 웬일이래.
우리는 사람이 없는 롯데리아 2층에 올라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나눠먹었고, 오랜만에 한껏 수다를 떨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 A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평소 예쁜 쓰레기(?)를 이것저것 사들이는 걸 좋아하는 나를 늘 말리는 역할을 하는 A는 그날도 아이패드를 사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는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이패드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말려주는 A가 고마웠다.
조금이라도 자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며 헤어지는 길, A는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저번에도 간식이며 돈이며 바리바리 들고 온 그녀였기에 행여나 또 뭔가를 받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애초에 햄버거 세트 하나로는 절대 갚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버스가 오자 A는 예상대로 가방을 뒤적였다. 그럼 그렇지 하고 서둘러 버스로 도망치는 나에게 A가 언니, 이거 가져가! 하며 황급히 얇은 동화책 한 권을 내밀었다. A를 한번 째려보고 책을 받아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는 책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책을 자주 사곤 했다. 그래, 책 한 권 정도면 받아도 괜찮겠지.
버스 창 너머로 A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핸드폰 위로 스마트뱅킹 알림이 떴다. 보낸 사람을 확인하니 A였다. 하... 그럼 그렇지, 기어이 햄버거 값 보냈구먼. 대단치 않은 저녁 한 끼조차 결국 대접하지 못했다는 허탈한 마음으로 잔액을 확인하는데 믿을 수 없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진심으로 잘못 본 건 아닌지 눈을 의심했다. A가 보낸 돈은 304만 원.
당황해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책 표지를 뒤지자 A4용지 한 장이 버스 바닥으로 떨어졌다. 황급히 종이를 펼쳤다.
블로그에 종종 제일 가까운 친구들만 볼 수 있는 일기를 쓴다. 가족만큼 가까운 사람들이라 때로는 누추하고 초라한 심정까지도 솔직하게 쓰는 일기장이다. 비공개로 설정된 나의 이 비밀 일기장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서로이웃으로 지정해 놓은 열 명 남짓. 그러고 보니 며칠 전의 일기에 동생의 시술비가 걱정된다고 무심코 적었던 것이 떠올랐다. A와 B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친하게 지내는데, 일기를 올리고 난 그 짧은 시간 사이 A와 B가 나를 위해 여기저기 연락해서 모은 돈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내 상황을 아는 사람도, 연락할 사람도 몇 명 없었을 텐데. A는 취업 준비생, B는 사회 초년생이다. 설마 둘이서 적금이라도 깼나, 도대체 어떻게 이런 큰돈을 마련했을까. 내가 아는 A와 B라면 분명 자신이 가진 대부분을 나를 위해 내놓았을 것이고, 그 사실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을 이들.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버스가 아파트 정문에 도착할 때까지 책 표지를 덮고서 숨죽여 울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집에 돌아와 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우리가 나눈 카톡을 모두 뒤졌지만 예전에 받아놓은 계좌번호조차 없었다. 다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A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너 이거 뭐야.
- 뭐가?
- 이거 뭐냐고...
-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 빨리 계좌 보내.
- 계좌? 나 그런 거 없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고 뻔뻔한 A의 목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아 이거 뭐냐고 진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핸드폰을 든 채 엉엉 울어버렸다. 늘 받아야 하는 미안함,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친구들의 돈을 빼앗은 듯한 아픔, 한편으로는 병원비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뒤섞여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핸드폰 너머의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내 울음을 듣고 있었다. 왜 내 삶은 이렇게 비루해서 친구들에게 폐를 끼쳐야 할까라는 생각에 불현듯 울분이 치밀었다. 아 몰라, 나 잘 거야.
A는 그제야 빙긋 웃으며 한 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언니, 그걸로 아이패드 사라.
불을 끄고 누웠는데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자야 해서 마음은 조급한데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든 사이 몇 명의 친구가 병원비에 보태라며 돈을 더 보내 놓아서 총 370만 원이 모였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간신히 자고 일어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받아야 하는 마음이 죽도록 힘겨웠지만, 이번 병원비도 동생의 시술비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에게 말할 수 있어서-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슬프도록 가벼웠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다음날 점심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삼각김밥을 사려다가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삼각김밥을 내려놓고 대신 썩 괜찮아 보이는 도시락을 집어들었다. 나의 이런 작은 용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게 주었겠지 싶어서.
언니, 나 너무 힘들어. 엄마가 떠나면 엄마만큼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그게 정말 너무 힘들어. 가장 친한 언니 C에게 어느 날 힘겨운 마음을 간신히 털어놓았다. 언니의 답장에 또 한참을 울었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진짜 친구는 그 친구가 기쁜 순간이 아니라 힘든 순간에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차마 내게 전달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함께 오지 못했던 B는 내가 돈을 받기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A에게 듣고 오래도록 울었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A와 B에게 보낼 편지를 적었다.
내 생의 아마도 가장 힘겨운 날에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곁에서 함께 걸어 줘서 고마워.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언젠가 네 삶에 고난이 닥쳐온다면, 그땐 내가 네 곁에 있을게. 네가 내게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