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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an 21. 2021

매일 우렁각시가 다녀가는 집

한 환자를 돌보려면 온 가족이 필요하다



  '매일'이라고 하면 조금은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매번 많은 우렁각시들이 다녀가는 집이 있다.

  바로 우리 집!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몇 년 전부터 미디어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 아기를 돌봐 본 경험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양육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를 먹이고 입혀 돌봐가며 한 명의 성인으로 자라나게 하는 일은 분명 온 마을, 어쩌면 그 이상이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엄마를 간병해 온 지난 시간 동안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간병을 하다 보면 집안일 같은 다른 일상들은 어느새 뒷전이 되고 사치가 된다. 비록 한 사람을 돌보는 일이었지만 일평생 집안의 모든 일들을 담당하며 가족을 묵묵히 건사해 왔던 엄마의 공백은 너무도 컸다.


  엄마의 형제인 이모와 두 삼촌에게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엄마의 언니인 이모는 발병 초기부터 지금까지, 주말이면 대전에서 올라와 이틀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꼬박 주방에 붙어서 모든 집안일과, 우리가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을 모두 해놓고 내려가신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주는 큰삼촌, 세상 구두쇠여서 오랜 시간 모았을 돈을 엄마의 치료비로 선뜻 내어준 작은삼촌. 아무래도 엄마는 형제 복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고 우리는 늘 이야기했다.

  

  그런가 하면 일주일에 두세 명씩은 엄마의 친구분들이 찾아오신다. 직접 만든 반찬이나 바리바리 싸오신 음식들, 우리 집에 필요할 것 같아 가져오셨다는 살림살이들, 때로는 직접 적은 편지나 정성 듬뿍 담은 온갖 선물들과 함께. 김장철이면 이 집 저 집에서 각자 담은 김치들이 도착해 텅 비어 있던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운다. 김장을 하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단 한 번도 김치가 부족해 본 적이 없다. 전라도식 김치, 경상도식 김치, 충청도식 김치까지.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는 전국 팔도의 맛이 다 모여 있다.  





  엄마의 절친한 우렁각시님. 몸도 안 좋으신 데다 중학교 선생님이라 바쁘시지만 몇 주에 한 번씩은 꼭 잊지 않고 찾아오셔서 우리 먹으라고 접시에 세팅까지 다 해놓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라 그런지 늘 우리 삼 남매의 초딩 입맛을 완벽하게 저격하시는 분.



  누가 봐도 일부러 주문하신 게 너무 빤히 보이는데 행여나 받는 내 마음이 어려울까 봐 저렇게 선의의 거짓말도 불사하지 않으신다. 집사님이 계셔서 우리가 더 행복해요.




  올 때마다 집 앞 빵집에서 빵을 가득 들고 오시는 분, 장을 볼 때마다 우리 몫의 장도 함께 봐서 문 손잡이에 걸어두고 가시는 분 등등. 우렁각시님들의 마음은 참 다양하다.     

  마지막 사진은 지난 여름 엄마가 입원했을 때 이모가 오셔서 한가득 차려주신 상. 병원에서 매일 삼각김밥만 먹던 내게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였다. 이모는 교대하고 돌아온 내게 이 한 상을 차려주기 위해 이날도 대전에서 왕복 다섯 시간은 되는 길을 올라오셨다.





 코로나가 심해진 이후로 집에 찾아올 수 없으니 이제는 그만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요즘에는 신세대처럼 무려 기프티콘을 보내시거나 집으로 몰래 배달을 시키신다.


  아무래도 그녀들의 사전에 '안 보낸다'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게 틀림없다.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자음판을 하겠다고 해서 이런 문장을 적더니 우렁각시들에게 보내라고 했다.

  엄마가 투병하던 오랜 기간 동안 엄마의 곁에서 서서히 사라진 지인들도 있다. 물론 자신의 아픈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했던 엄마가 스스로 연락을 끊은 덕이겠지만, 여태 엄마와 우리 가족의 곁을 지켜주고 있는 많은 우렁각시들이 있다. 그래도 무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와 주는 우렁각시들의 마음을 대체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며 드릴 것이 없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신다.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너는 미처 모를 거야, 엄마에게 받은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하시면서. 그리고 서로 짠 것처럼 이런 말도 덧붙이신다. 더 자주 와보지 못해서,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초기에는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든 갚아보려 발버둥쳤지만,  받은 것이 너무 많아 어떤 마음으로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갚으려는 시도조차 포기했다. 그런데 그런 당신은, 이렇게까지 주시면서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을까.

 

  평소 작은 것이라도 받으면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인 엄마에게 이렇게 아낌없이 받기만 하는 세월은 어쩌면 꽤나 힘겨운 날들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나 많은 우렁각시들이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는 걸 보니 나는 엄마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에게도 엄마는 이 오랜 시간 동안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올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인 거겠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오늘도 우렁각시들의 사랑을 흠뻑 받기만 한 채로- 한없이 고맙고 사랑하는 그분들의 삶에 행복과 기쁨만이 가득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때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이지만, 그 마음에 간신히 기대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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