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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an 30. 2021

옆 침대 보호자 아주머니를 안아드렸다

병동 룸메이트 모음집

  여러 번의 입원 기간을 지내면서 다양한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났다. 같은 환자복을 입고 좁은 침대에 누워 있지만 각자 다른 이름의 병과 다양한 통증과 사연을 말 못 할 사연을 지니고 병원에 온 이들. 엄마와 나 역시 병동의 많은 환자들 중 하나였다.

  4달이 넘는 입원의 시간 동안 많은 환자들이 우리의 곁을 스쳐갔다. 때로는 우리 역시도 그들 옆을 스쳐가는 환자였을 터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실려왔는데도 또 술을 마시기 위해 퇴원하고 싶다던 아저씨,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한번 입을 열 때마다 온 병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할아버지, 두개골 오른쪽이 함몰되어 머릿 가죽이 움푹 들어간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기분 좋은 퇴원과 여러 번의 죽음을 보았다. 여러 명의 환자와 보호자가 각자의 커튼 안에 기생하는 좁은 병실에는 퍽 다양한 삶이 뒤섞여 있었다.


  준중환자실에만 있다가 4인실로 옮겨간 첫날, 마주친 옆 침대 아주머니의 포스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는 밤에도 한 시간 잠드는 경우가 드물었고 낮과 다름없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에 밤에도 속삭이듯 엄마와 대화를 해야 했고 수시로 석션도 해야 했다. 그녀는 이윽고 커튼 간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더니 기어이 시끄럽다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상황은 물론 미안한 일이었지만 이곳은 병원이고 환자를 위해 하는 일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 트러블을 빚던 중 그녀의 간병인까지 합세해 신경전이 벌어졌다. 마찬가지로 딱 봐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지닌 데다 붙임성이 장난 아닌 아저씨는 마치 병동에서 나고 자란 것처럼 모든 환자, 그리고 보호자들과 친한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아주머니를 간호하는 중간중간 자신도 병원에 입원해 별안간 환자복을 입고 나타나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연히 남편인 줄 알았던 그는 알고 보니 아주머니의 나이 많은 애인이었고, 두 사람은 보험료를 타내기 위해 온갖 구실을 만들어 입원하는 사람들이었다.

  말 많고 탈 많던 그 커플이 쫓겨나듯 퇴원한 뒤에야 병실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간병인을 고용해 24시간 간병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입원은 초짜였던 내가 보기에 교대 없이 하루 종일 환자를 케어하는 간병인 여사님들은 한없이 대단해 보였다. 여사님들은 조선족이 대부분이어서 고향 얘기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시곤 했다.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다 보니 그녀들의 짐은 늘 캐리어에 한가득 담겨 있었고 냉동실에는 얼린 밥과 반찬들이 그득했다.


   점심과 저녁 시간이 되면 여태껏 단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묘한 향신료 냄새가 풍기는 배선실 전자레인지는 끼니때마다 얼린 밥을 녹이느라 분주했다. 전자레인지가 하나뿐인 조그만 배선실에서 만들어졌다기에는 너무 엄청나 보이는 음식들도 종종 등장했다. 어쩌다 누가 중국식 옥수수 면이라도 삶는 날에는 여사님들 사이에 파티가 벌어졌다.  


  드물지만 나와 같은 가족 간병인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이게 바로 동병상련이라는 건가. 딸이나 손녀 같으셨는지, 엄마를 돌보는 게 기특하다며 비싸고 맛없는 병원밥이 싫어서 허구한 날 편의점 신세를 지는 나를 볼 때마다 여사님들은 과일이며 간식을 종종 쥐어주셨다. 함께 고생하는 투박한 손길 끝에서 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집에서는 매일 먹을 수 있던 과일이 병원에서는 도무지 먹기가 힘들어서 새삼스럽고 감사했다.


  

다들 챙겨주셔서 간식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밥 안 먹는다고 자신의 식사를 통째로 주시던 아주머니.




  3인실에 있던 어느 날, 새로운 환자가 옆 침대에 들어왔다. 연배가 얼추 우리 할머니쯤 될까. 염색하신 것으로 보이는 특이한 자줏빛 머리를 가진 할머니 곁을 키가 작고 왜소한 보호자가 지키고 있었다. 간병인이겠거니 했던 그녀는 알고 보니 할머니의 둘째 딸이었다. 다음 날은 큰 키에 장발을 지닌 막내딸이 교대를 하러 왔다. 두 자매는 하루씩 교대해 가며 어머니의 곁을 지켰는데 환자인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어찌나 선하고 상냥한지 지금껏 병동에서 본 그 어떤 보호자보다도 존경스러웠다.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상냥한 말투를 잃지 않았고 시간이 남을 때는 꼿꼿이 앉아 성경을 읽었다.


  할머니는 폐암 말기 환자였다. 산소호흡기를 끼고도 숨쉬기 힘들어했고, 딱 봐도 곧 임종을 앞두신 분 같았다. 소식을 들은 손녀가 반차를 내고 할머니에게 달려왔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할머니가 키우다시피 했다는 손녀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병실의 다른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시간이 넘게 울었다. 안 돼, 할머니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 할머니는 그런 손녀의 등을 오랫동안 토닥이며 쓸어내렸다. 손녀의 슬픔이 커튼 너머에 있는 내게도 그대로 전해져 오는 바람에 듣고 있기가 너무 힘에 겨웠다. 커튼 너머에서 오래도록 숨죽인 채 그녀와 함께 울었다.

  한참을 울던 손녀가 떠나고 난 뒤 분주하게 뭔가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워 있는 환자들을 위한 드라이 샴푸로 할머니의 머리를 감기는 둘째 따님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혹시 샴푸를 조금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혼자서 엄마를 돌보다 보니 머리를 감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엄마에게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다. 어머나, 그럼요! 흔쾌히 대답한 그녀는 드라이 샴푸를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호흡기를 잡고 고군분투하던 내가 머리를 다 감기고 수건으로 닦아낼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었다.


  다음 날, 할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보통 임종을 앞둔 환자는 1인실로 보내지곤 했는데 그날 보호자 아주머니도 의사 선생님께 얼마 안 남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병실 문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아주머니와 나는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침대를 정리하고 1인실로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함께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숨 쉴 수 없어 헐떡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작고 여린 체구의 아주머니는 내 곁에 서서 덜덜 떨고 계셨다.

  아득하게 전해져 오는 떨림에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그녀를 꼭 안아드렸다. 자그마한 아주머니의 몸이 내 품 안에 꼭 안겼다. 아주머니는 차마 더 이상 할머니를 쳐다보지 못한 채로 내 옷이 흥건히 젖을 때까지 눈물을 쏟아냈다.


  그 이후로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다만 며칠 후부터 1인실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로 미루어 이제 아픔 없는 곳으로 떠나셨겠구나 하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몇 시간 후 아주머니가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병실로 찾아왔다. 그녀의 손엔 드라이 샴푸 두 통이 들려 있었다.


  -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요. 꼭 그럴 수 있을 거야.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짧은 기도를 해준 뒤 샴푸를 건네주고 쓸쓸히 병실을 떠났다. 까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엄마와 나밖에 남지 않은 3인실에 앉아 아주머니가 떠난 문 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에 든 드라이 샴푸를 흔들어 봤다.

  거의 새것인 샴푸 넉넉하고 서글프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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