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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Oct 14. 2020

22살, 엄마가 루게릭병에 걸렸습니다

루게릭 환자 간병일기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ALS로 추정됩니다.”


  5년 전, 2015년의 여름이었다. 엄마는 종종 어깨가 아프다고, 팔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흔한 오십견이겠거니 생각했다. 몇 년 전에도 엄마는 오십견으로 한참을 고생했었기 때문이다. ‘오십견’ 치료를 위해 동네의 조그만 정형외과에 몇 개월을 다니는 동안 엄마의 몸은 점점 더 말라갔다. 평생 마른 체형이었던 엄마가 조금 더 말라가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몸은 점점 더 힘을 잃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컵 하나 제대로 쥐지 못했고, 나중에는 숟가락조차 들 수 없어 가족들이 밥을 떠먹여 줘야 했다. 정형외과에서도 가정의학과에서도 이런 증세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여러 군데의 병원을 빙빙 돌아 도착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정밀 근전도 검사를 받은 뒤에야 우리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진단명 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

  온몸의 근육이 빠지고 서서히 굳어가는 병.

  사람들은 이 병을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부른다.          


  ―

  루게릭병은 느린 듯 빠르게, 그러나 확실하고 잔인하게 엄마의 온몸 구석구석을 파괴하고 못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루게릭병이 집어삼킨 것은 비단 엄마의 육체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아빠와 학생이었던 우리 삼남매, 대전에 살고 계시던 이모의 삶까지 서서히 잠식해 나갔다. 흔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한 환자를 간병하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필요했다.      


  엄마가 아프기 전의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흔히 ‘사망년’이라고 부르는 3학년이었으며,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래방에 가는 걸 즐겼다.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는 걸 좋아했다. 옷을 사게 되는 날이면 높은 확률로 분홍색을 골랐고, 이왕이면 꽃무늬와 레이스가 있는 원피스를 좋아했다. 쇼핑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서 한번 마트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자 돌아다니곤 했다. 비록 커피는 못 마시지만 혼자 카페 가는 걸 좋아해서,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그러나 엄마를 간병하게 된 후로 이 모든 일들은,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남았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빠르게 병들어가는 엄마를 끌어안은 채 우리는 이 잔혹한 병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싸움의 대상은 단순히 질병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국가의 제도와, 사람들의 시선, 지긋지긋한 가난,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엄마를 바라보며 매일같이 가슴을 저미는 고통으로부터.


  그중에서도 직장인인 아빠와 언니, 수험생인 동생을 대신해 엄마의 주(主)간병인이 된 나는 늘 최전방에서 사투를 벌였다. 스물두 살의 평범한 대학생은 그렇게 5년을 살아내고 스물일곱의 프로 간병인이 되었다.

  이 글은, 그 치열한 싸움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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