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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Oct 20. 2020

간병일기, 시작하는 마음

나는 왜 기록(記錄)을 결심했을까


  



  브런치에 글을 써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의 전우이자, 이 모든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언니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그거 쓰는 거, 괴롭지 않겠어?"


  언니의 말이 맞다. 아직 많은 글을 쓴 건 아니지만- 그간의 일들과, 또 중요했던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퍽 괴로운 일일 것이다. 의연한 척은 했어도 나는 여전히 엄마의 옷이 걸려있는 옷장을 잘 열지 못한다. 몇 년 전에는 엄마의 사진을 정리하려다가 건강했던 사진 속 엄마의 모습에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나서 그만두었다.


  어쩌면 이 글을 기록하는 일도,  이전의 앨범을 뒤적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은 고이 접어서 마음 제일 구석진 서랍에 꽁꽁 숨겨두었다. 마음 맨 위쪽에는 가볍고 즐겁게 꺼내볼 수 있는 추억들을 올려두었다면, 가장 깊숙한 서랍에는 열어보는 것조차 너무 힘겨워서 꽁꽁 봉인해 넣어둔 찰나의 감정들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가장 수치스러웠던 순간이나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실수 같은 것들. 그리고 엄마가 아픈 뒤로는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의 일부도 그곳에 넣어두었다.

 

   서랍 속에 든 것 중 대표적인 것은 단연 건강했을 때 엄마의 모습이다.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두 발로 서 있는 엄마, 엄마의 미소, 엄마의 목소리, 엄마가 생일날이면 불러주곤 하던 노래, 화장하던 엄마, 검고 숱 많은 머리를 유독 공들여 가꾸었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건강할 때 입었던 옷과 신었던 신발까지도. 이 글은 나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할 눈물 버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러 번 생각은 해왔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간들을 공들여 기록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가장 최근에 엄마의 보호자로 입원했을 때,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 1, 2권을 다 읽었다.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다음 세대 의사들 중 누군가가 다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보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우리가 남겨놓은 진료 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이 문장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는 왜 굳이 힘들게 이 시간들을 기록하려 하는가? 하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참 버거운 오늘이지만, 오늘의 순간은 매번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 평범한 하루조차도- 우리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사진을 잘 찍지 않게 되었다. 가구 대신 의료기기가 가득하고 작은 요양병원처럼 변해버린 집, 앙상하게 말라버린 엄마, 어느 순간 꾸미는 것을 포기하게 된 나. 그래서 우리의 투병 기간은 남아있는 사진이 많지 않다. 훗날 이 시간들을 기억할 때 우리의 날들이 빠르게 휘발되어 남아있는 것이 없을 것만 같은 초조함이 내 안에 있었다.


  묘하게도 우리의 시간들은 점점 더 힘겨워지고, 그러나 아름다워져 간다. 졸여서 꾸덕해진 진액처럼 그 농도가 짙어진다. 특별하게 기억될 순간들이 너무 지독하게 아름다워서 자꾸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애써 부정하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우리 생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임을 직감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엄마와 나는 무력하고 속절없다. 그러나 내가 가진 언어와 문장들로 이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글을 통해서나마 이 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할 생각이다.


  이것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기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우리가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처절하게 사랑했던 나날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화석처럼 남아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조심스레, 시작해보는 마음이다.


글을 쓰는 건 나의 꿈이자, 엄마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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