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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Aug 22. 2021

아름다운 것들에 간신히, 기대어

윤도현 -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아름다운 것들이 없이는 수가 없는 요즈음이다.

  4단계를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콕 생활을 하던 중,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제발 오늘은 아무것도 없이 와 달라고 사정해도 절대 빈손으로 오지 않는 친구는 이날도 음료와 간식을 양손 가득 들고 왔다. 함께 점심을 먹고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문득 친구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엄마의 친구분께서 얼마 전 루게릭 확진을 받았다고 했다.

  아, 그래. 그렇구나...

  다시 듣는 병명 하나에도 덜컥 내려앉은 마음을 부여잡고 애써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려고 일부러 이것저것 물었다. 엄마와 거의 비슷한 나이의 여성분, 멀지 않은 곳 거주, 은퇴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족은 남편과 자녀 두 명. 현재 걷는 것과 식사가 불편한 상태.

   손이 차갑게 식었다. 앞으로 전개될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이 너무 저릿해와서 그만 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어떡해 00아, 어떡하지. 그분들 너무 힘들겠다. 너무 힘들겠다... 어떡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을 대체 어떻게 지나온 걸까. 돌이켜 보니 힘든 시간들을 견디게 했던 힘은 '아름다운 것들'에서 왔다. 내가 좋아했던 엄마의 똘망한 눈동자, 병원비가 부족했을 때 친구들이 보태어 준 기적같은 여름날, 5년 동안 동생을 위해 매주 대전과 서울을 오간 이모의 믿기지 않는 수고 같은 것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겨진 삶을 살아내는 일 쉽지 않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빈자리에서 울리는 여진을 견딘다. 가볍게 지나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묻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덜 아문 상처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도 해야 하고 코로나도 조심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한다. 나아질 기미가 없는 팬데믹 상황도 한숨을 깊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오늘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들이다. 딸의 생일에 피자를 사주고 싶었던 기초생활수급자 아버지에게 무료로 피자를 보내준 인천의 한 피자집 사장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되뇐다. 사장님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잔고가 571원밖에 없는데도 사랑하는 딸의 생일에 피자를 사주고 싶어 염치를 무릅쓰고 어렵게 피잣집에 전화했을 아빠의 마음 또한 아름다웠다.


  미군이 철수한 지 2주 만에 탈레반에 점령당한 조국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대통령과 장관들이 도주한 상황에서도 마지막 전투를 선포하는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의 연설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영국에서 엘리트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를 다시 죽음이 기다리는 전쟁터 한복판으로 돌아오게 한 힘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도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그는 여전히 판지시르 요새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 


  평범하게 살다가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것마저 너무 어렵고 버거워졌다고 평가받는 시대의 한 복판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종종 나를 살게 한다. 가사의 내용처럼 이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남을까? 싶어서 종종 불안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길거리를 걷다 소낙비에도 살아남은 꽃을 볼 때 드는 안도감에 힘입어,

  오늘도 아름다운 것들에 간신히 기대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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