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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Nov 06. 2020

어떡하지, 손가락이 안 움직여.

루게릭병이 빼앗아간 것들


  루게릭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도, 그 진단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실은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가 불치병 환자라니. 불치병이라는 건 드라마 속에나 있는 게 아니었나? 인터넷에 병명을 검색해 평균 수명을 알아봤다. 목을 뚫어 기도에 삽관을 하지 않을 경우 평균 수명은 3-5년.

  우리는 5년짜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병을 진단받은 첫 해에는, 엄마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병에 걸린 첫 1년이 우리에게 퍽 끔찍했던 이유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엄마와 가족들은 평소처럼 지내려고 애를 썼지만 언제 어떻게 사지를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의 숨을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병에 대한 정보는 찾아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상상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두려웠으니까.




    어느 날 저녁, 좁은 거실 한가운데 전기장판을 깔고 엄마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엄마가 환자가 된 이후로는 좀처럼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던 중에 엄마의 표정이 갑자기 빠르게 굳어졌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어떡하지? 손가락이 안 움직여."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빠르게 쓸어내렸다. 엄마가 들어 올린 검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굽혀보려 애써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의 시도 끝에야 간신히 손가락을 조금 움직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누워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동그랗게 말린 등이 자그맣게 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엄마... 손 좀 잡아줘."


  태어나서 지금껏 봐온 엄마는 제법 강한 사람이었다. 아빠의 사업 실패에도, 그로 인한 가난에도 엄마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씩씩하게 집안을 건사하며 세 명의 자식을 길러냈다. 억세다는 표현보다는 강인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단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운 적이 없는 사람.

  그런 엄마의 입에서 저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어서, 나는 언니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마주했을 때처럼 약간의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도 물론 두렵지만 당사자인 엄마가 겪고 있는 불안과 공포는 얼마나 더 클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엄마의 손을 꼬옥 잡았다.




  루게릭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지를 무력화시키지만, 어떤 부분부터 마비가 될지는 환자마다 다르다. 다리부터 오는 환자, 구강 쪽으로 와서 말부터 못 하게 되는 환자 등등. 엄마의 경우에는 근육이 무력화되는 증세가 손과 팔로 가장 먼저 왔다. 발병 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엄마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누가 떠먹여 줘야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팔을 완전히 못 쓰게 된 후 다음 순서는 다리였다. 근육과 살이 모두 빠져 뼈만 남은 채 앙상한 다리 때문에 엄마는 자꾸 풀썩 주저앉더니, 2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완전히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살이 하나도 없어 꽁지뼈가 도드라진 엉덩이로는 그대로 앉을 수가 없어 방석을 두 겹으로 깔아야 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는 목의 근육이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머리를 들고 있을 수 없었다. 이제 하다 하다 목까지 빠지는구나 싶어서 허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목에 근육이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스럽게 그 근육 덕에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엄마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왔다.

  

  근무력이 진행되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으로 근육 튕김이 있었다. 우리는 그 증세를 '근육이 펄떡거린다'라고 표현했다. 온몸에서 근육이 뱀처럼 울룩불룩 튀는 증상이 일어나면 곧 그 육체가 무력화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근육이 펄떡일 때마다 엄마는 겁에 질렸고 나는 그 공포와 불안을 감히 위로조차 할 수 없었다.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근육은 매일같이, 온몸을 가리지 않고 펄떡였다. 멈추지 않는 증상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엄마의 사지가 하나하나 무력화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여기서 멈추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루게릭병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이미 나빠진 부분은 어쩔 수 없으니 제발 지금이라도 멈춰주기를.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숨죽여 울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간절히 기도했던 어느 날, 울다 지쳐 잠들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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