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동에서부터 북촌, 세종마을까지..서촌의 여러 이름들

[북촌마실의 발견]

by 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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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지금 부르는 서촌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오래된 공식 지명은 아닙니다.


조선시대 기록을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서촌 일대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공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문헌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장의동, 장동, 창의동이었고,
또 어떤 기록에서는 북촌, 북동, 북리, 혹은 우대, 상대, 상촌으로 나타납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이 지역이 세종대왕의 탄생지로 알려지며 ‘세종마을’이라는 이름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촌이 이처럼 많은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이 동네가 단일한 성격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쪽에는 인왕산이, 북쪽에는 북악산이 자리해 지리적으로는 서쪽이자 북쪽으로 인식되었고,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문화와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생활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시간과 서로 다른 시선이 겹겹이 쌓여 오늘 우리가 걷는 서촌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서촌이 불렸던 이름들을 따라가며 이 동네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천천히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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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이름, 장의동과 장동


서촌 일대는 조선 전기 기록에서 장의동 또는 장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조선시대 한성부의 행정 체계에서 ‘동’은 오늘날의 행정동과 같은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도성 안팎의 생활 구역이나 지리적 범위를 가리키는 명칭에 가까웠습니다.


장의동과 장동 역시 명확한 경계를 가진 동네라기보다는 경복궁 서쪽 일대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장의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인왕산 자락 세검정 일대에 있었던 사찰 장의사와의 연관성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한편 ‘장동’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문인과 사대부들이 이 일대에 거주하며 문헌과 회화 속에 자주 등장하면서 문화적 이미지가 덧입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은 당시 장동 일대가 풍경과 감상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이후, 장의동과 장동이라는 이름은 공식 행정 지명에서는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스크린샷 2026-01-14 오전 11.43.32.png 일제초기 서촌 모습 (출처: <서촌: 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2010)> 335쪽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북촌·북동·북리


오늘날 ‘북촌’이라고 하면 경복궁 동쪽을 떠올리는 것이 익숙합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서촌 일대 역시 ‘북촌’으로 불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한성부는 다섯 개의 구역, 이른바 오부로 나뉘었고 현재의 서촌 일대는 이 가운데 북부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문서나 지리지에서는 이 지역을 ‘북부에 속한 마을’이라는 의미로 북촌, 북동, 북리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즉, 과거의 ‘북촌’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북촌이라는 개념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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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위쪽 동네, 우대·상대·상촌


조선 후기에는 서촌 일대가 우대, 상대, 상촌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청계천의 상류, 즉 ‘위쪽에 있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우대’는 단순한 지리적 위치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에는 궁궐 행정을 실무적으로 담당하던 아전, 역관, 의관 등 중인 계층이 많이 거주했습니다.

이들은 학문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골목과 집 안에서 문학과 그림, 음악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서촌은 문화와 예술 활동이 활발한 동네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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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기억, 세종마을


조선 초기, 서촌은 경복궁과 가까운 위치 덕분에 왕족과 종친들이 거주하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을 비롯해 태종, 효령대군, 안평대군 등 여러 왕실 인물들이 이 일대와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이 경복궁 서쪽 일대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근대 이후 다시 주목받으며, 이 지역은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종로구에서는 ‘세종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문화 행사와 지역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자하문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세종대왕 탄생지 기념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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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부르는 이름, 서촌


지금은 이 모든 이름 대신 ‘서촌’이라는 이름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촌’이라는 표현은 1773년 『승정원일기』에서 영조의 발언을 통해 확인됩니다.


다만 이 시기에는 공식 지명이라기보다는 도성 서쪽 마을을 가리키는 설명적 표현에 가까웠습니다.


근대 이후 ‘서촌’이라는 이름은 경복궁 서쪽뿐 아니라 정동과 서소문 일대까지 보다 넓은 범위를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촌’이라는 이름은 2000년대 이후 북촌과 대응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학계와 지자체 연구, 주민들의 활동을 거치며 점차 지금의 의미로 자리 잡게 됩니다.



서촌과 관련해 이처럼 여러 이름이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이 동네가 다층적인 시간을 살아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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