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 겹쳐진 시간들, 백인제가옥을 기록하다

북촌마실

by 윰기자


북촌한옥마을 근처에 있는 백인제가옥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한옥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백인제가옥은 전통 한옥이라는 틀 안에 일본식과 서양식이 겹쳐진 집이죠.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이러한 구조도 있지만, 여러 시간이 쌓여 있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오늘은 언제 가도 좋지만 가을에 가면 특히 더 아름다운 백인제가옥에 대한 내용입니다.


20240113_161916.jpg


# 친일파의 집에서 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조선시대 북촌은 궁궐과 가장 가까운 주거지였습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권력의 중심을 오가던 사람들이 머물던 동네였죠.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북촌은 급격히 변합니다. 인구가 밀집되며 대규모 저택은 쪼개지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옥마을’의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변화의 와중에도 대규모 저택으로 남아 있는 집이 있습니다. 백인제가옥입니다.

백인제가옥은 1913년, 친일 인물 한상룡이 지은 도시형 개량한옥입니다. 대지가 약 737평에 이릅니다. 지금의 북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입니다. 현재 공개된 북촌 가옥 중에서는 가장 큽니다.

(북촌에서 가장 큰 한옥은 윤보선 가옥인데, 현재 후손이 살고 있어서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상룡은 당시 이 집에서 조선총독부 공위 인사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석유 재벌 록펠러 2세가 한국에 왔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고도 전해지죠. 이 집은 당시 조선 상류층의 권력과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의 이름은 한상룡이 아닌 백인제로 남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외과의사였던 백인제는 1944년 이 집을 매입했고, 해방 후 의료 재단을 설립하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인물입니다. 한국전쟁 중 납북되며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되며 마지막 소유자의 이름을 따 ‘백인제가옥’이 되었습니다.


친일파가 지은 집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
이 아이러니는 이 집이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모순과 전환을 품은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20251118_142143.jpg


# 한옥의 형태를 빌린 근대의 집


백인제가옥 문을 들어서기 전, 처음부터 어딘가 낯섭니다. 높은 돌계단 위의 솟을대문, 대문 옆으로 길게 이어진 담장, 붉은 벽돌로 쌓은 서양식 담벼락은 전통 한옥의 인상과 다릅니다.


계단을 올라 대문을 지나면 붉은 벽돌이 나오는데요, 행랑채와 본채(사랑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합니다. 벽돌 사이의 문으로 들어가면 본채와 백인제가옥의 넓은 정원이 나옵니다.


본채는 한옥의 기본 골격 속에서 유리문이 눈에 띕니다. 원래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는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이 집은 유리문을 달아 추위를 막았습니다.

P1181290.JPG

또 한옥은 사랑채와 안채가 별도의 건물로 되어 있지만,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는 실내 복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함을 취했죠. 이는 일본식 주택의 영향이 뚜렷한 구조입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2층 방입니다. 단층이 일반적인 한옥과 달리, 백인제가옥에는 2층 공간이 있습니다. 이는 주거 공간이 단순히 전통을 따르기보다, 근대적 생활 방식에 맞게 변형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집은 ‘전통을 보존한 한옥’이라기보다, 전통이 시대에 적응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P1181344.JPG


# 북촌을 내려다보는 정원


백인제가옥은 북촌에서도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어졌을 당시에는 북촌에서도 손꼽히게 전망이 좋은 집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주변 건물로 시야가 일부 가려졌지만, 사랑채 2층이나 별당채에서는 북촌과 서울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마당은 이 집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봄과 가을, 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 이 공간은 한옥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줍니다.

20251118_142001.jpg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별당채는,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별당채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부채꼴로 펼쳐진 서까래를 볼 수 있습니다. 서까래는 많은 목재가 필요한 구조로 당시 상류층 가옥에서만 가능한 구조입니다. 이 집이 얼마나 많은 자원과 권력을 바탕으로 지어졌는지를 말없이 드러냅니다.

P1181359.JPG


# 북촌에서 만나는 가장 복잡한 집


백인제가옥은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닙니다. 이 집에는 친일의 흔적과 독립의 기억, 전쟁의 상처가 한꺼번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이 집은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북촌마실은 백인제가옥을 ‘보존된 한옥’이 아니라, 도시와 시대가 남긴 기록으로 바라봅니다. 이 집을 천천히 걷는 시간은, 북촌이라는 공간을 다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ㅇ 북촌마실은,

북촌과 서촌을 가장 깊고 의미있게 경험하게 해주는 로컬 스토리 브랜드입니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문화 공간으로 북촌을 공유하며,

궁궐, 한옥, 골목, 로컬 가게, 숨은 이야기까지 발굴하고 기록합니다.

북촌을 더 이상 익숙한 골목이 아닌

'발견'하고 '경험'하고 '소유'해보세요


ㅇ 더 많은 북촌과 서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smartstore.naver.com/bukchonmasil/products/12186280404


ㅇ 북촌의 풍경을 집에서도 감상하기: 2026년도 북촌 달력

https://smartstore.naver.com/bukchonmasil/products/12803564635


ㅇ 새로운 북촌을 만나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ukchon_masil


j_g9aV4fxPJZ0KoQAccbw2nS7kU.png


매거진의 이전글장의동에서부터 북촌, 세종마을까지..서촌의 여러 이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