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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지순 Mar 27. 2018

홍대리의 선택

선택의 순간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이직이 많은 경력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채용을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아서 퇴사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경력자들의 과거 행동은 채용을 결정하는 주된 판단 요인이다.


그래서 이직이 많다고 생각되는 경력자는 짧게 근무한 기업의 경력을 감추려고 한다. 이 직장인의 이력서를 보면 짧게는 3 개월 길게는 1 년 정도 공백기간이 듬섬듬섬 나있다. 3 개월의 공백은 쉽게 숨길 수 있지만 1 년 정도의 공백은 눈에 띄게 되어 있다. 깔끔한 이력서를 만들기 위해서 짧게 근무한 경력을 빼내지만 본인의 마음은 편치 않다.



5 년간 두 번을 이직한 홍대리는 창밖을 보고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 연기가 피어나듯 머릿속을 휘감았다.


첫 직장은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맨 처음 합격한 곳으로 취직을 했다. 하지만 사업 규모가 작다 보니 매번 회사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사장님은 폐업을 선언했다. 입사한 지 8 개월만에 벌어진 상황이다. 경력이 일 년이 채 안돼서 퇴직금도 없었고 마지막 월급은 받지도 못했다.


두 번째 직장은 좀 더 규모가 있는 기업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대기업 입사를 위해서 취업 재수도 하지만 홍대리는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결국 규모는 조금 크고 회사의 연혁이 제법 긴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전 직장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직무도 바뀌었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1 년 6 개월이 지났다. 일 년이 지나니 맡은 업무도 익숙해지고 친한 동료들도 생겼다. 특히 같은 팀 옆자리의  정대리는 마치 친언니 같았다. 항상 점심도 함께 했고, 개인적인 고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찾아갔다. 하지만 정착 정대리의 고민은 알지 못했다.


정대리는 공채로 입사하여 5 년이 지났지만 직무의 변화가 없었다. 신입사원도 거의 뽑지 않아서 누군가 퇴사를 하면 그 자리를 경력사원으로 채웠다. 회사가 안정적이고 근무 강도도 강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정대리는 이직을 했고 원하던 데로 업무 범위가 보다 넓은 직책을 담당하게 되었다.


홍대리의 옆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업무의 숙련도는 높고 연봉이 낮은 경력자를 찾다 보니 연봉이 맞으면 역량이 떨어지고 역량이 충분하면 연봉이 터무니없이 높았다. 정대리의 업무를 당분간 병행하게 된 상사의  짜증은 늘어만 갔고, 급기야 정대리가 맡았던 업무의 대부분이 홍대리에게 왔다.

회사의 대표나 오너들은 사람 욕심이 많다. 연봉이 매우 높더라도 역량이 뛰어나다 싶으면 일단 합격 선언을 한다. 이후에 실무 팀장과 인사담당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어떻게든 연봉을 맞추어보려 하지만 이미 기세 등등한 합격자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부터 서로 자존심 싸움이 시작된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현 기업의 연봉 수준보다 다소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한다. 하지만 기존 연봉과 별 차이가 없는 오퍼에 합격자는 자존심이 상한다. 보통은 앞자리 숫자 차이로 협상이 잘되거나 깨진다. 연봉 9900만 원과 1 억, 연봉 2900 만원과 3000 만원은 백만 원이라는 금액차이가 아닌 자존심을 지키는 key 가 된다. 9로 끝나야 잘 팔리는 상품의 가격정책과는 정반대이다.

홍대리는 안정된 직장을 다닌다는 만족감 만으로 버티기는 힘들었다. 추가 인력 충원은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홍대리는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정 대리에게 전화가 왔다. 최근에 밑에 직원이 퇴사를 해서 마침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여직원에 대한 복지도 좋아서 본인도 만족하며 지낸다고 한다. 정 대리의 SNS 에 올라온 직원들과의 사진을 보니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홍대리는 세 번째 직장을 선택했다. 3 년 정도의 경력을 인정받아서 다음 해에 승진도 했다. 기존에 담당했던 업무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친한 언니와 함께 일한다는 즐거움은 직장생활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친한 선배의 러브콜로 이직하는 경력자들이 상당히 많다. 함께 일하면 마음도 맞고 일도 수월할 거라 생각하지만 일장보다는 일단이 크다. 그래서 정말 친한 후배는 쉽게 영입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4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주변 사람의 변화도 많았다. 천년만년 다닐 것 같던 친구는 개인 온라인 쇼핑몰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해서 육아 휴직을 낸 친구, 업종을 바꾼 친구도 있었다.


직장생활은 스스로 변화를 줄 수도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해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홍대리가 그렇게 믿고 따랐던 정 대리는 남편을 따라 해외로 가기로 결정했다. 평소에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아서 이참에 유학의 길을 선택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유학을 선택하는 경력자들이 더러 있다.  귀국해서 해외와 연관된 직무를 담당하면 빛을 발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방황하게 된다. 참고로 유학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

정 과장의 환송회와 직속 상사의 환영회가 지나가고 홍대리의 고민이 왔다. 새로 온 박 차장은 홍 대리와 무언가 맞지 않았다. 사소한 일로 몇 번을 부딪히니 자연스레 박 차장을 피하게 되었고 취업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많아졌다.


직장생활을 5 년 정도 했지만 첫 직장은 8 개월 현 직장은 일 년이 안되었다. 첫 번째 이직 사유는 회사가 없어졌지만, 두 번째 이직 사유와 현재 기업에서의 퇴사 사유는 너무 개인적이다. 앞뒤 직장경력을 이력서에서 빼자니 나이에 비해 근속연수가 짧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한 여자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응시하던 홍대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면접관에게 변명을 늘어놓기보단 우선 박 차장을 만나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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