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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지순 Jan 28. 2018

업을 바꾸다

대부분의 국내 의류 브랜드는 자체적으로 기획 디자인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봉제공장이 필요하다. 필자가 패션기업 MD로 재직 중인 당시인 90 년대와 2000 년대 초에는 독산동과 성수동에 봉제공장이 많이 있었다. 재킷은 성수동에서 객공 방식(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맡아서 진행 )으로 하고, 바지는 독산동에서 라인 방식 ( 여러 사람이 공정을 나누어서 진행)으로 돌렸다. 하지만 국내 생산 비용이 점차적으로 인상되는 상황에서 제품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임가공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외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중국 생산 비중이 점차적으로 높아졌고 중국 생산 전문가의 영입도 이어졌다. 대부분의 패션기업의 중국 생산은 주로 한국과 가까운 상해나 청도, 위해, 대련 등에서 이루어졌고, 해외생산 선두주자인 이랜드는 중국 내륙 깊숙이 자리를 잡고 생산원가를 현격히 낮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H 대리는 중국 광주에서 처음 만났다. 필자는 본사 기획팀장, H 대리는 중국 생산 담당자였다. 광주에 거점을 두고 대부분의 제품을 생산했기에 지사의 역할은 상당히 컸고, 생산과 관련한 업무 FLOW 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함께 겪었다. 본사 작업지시서를 냄비받침으로 써서 H 대리를 혼내주기도 했지만 그와의 인연은 광주지사의 철수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서울 본사에서는 상품 디자인을 중시했고, 중국 지사에서는 원가 경쟁력을 중시했다. 단기적이고 가시적 이익이 필요했던 경영주 입장에서는 어떻게 서든 투입 원가를 낮춰서 보다 저렴한 원단을 사용하고 디자인을 단순화시켜 공임을 줄이는 쪽에 손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판매가 대비 원가 경쟁력은 뛰어났지만, 소비자에 외면받는 팔리지 않는 옷을 만들었고 광주지사는 철수하게 되었다.     


2006 년 여름 중국 청도 공항에 마중 나온 H 대리는 전보다 밝아 보였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일 때의 모습은 없어지고 규모는 작지만 지인들과 함께 알차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중국은 원가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은 미얀마나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H 대리의 선택은 한국 영업을 강화하거나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이었다. 그때 H 대리는 지인으로부터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추천받았고 필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청도에 투자한 자금과 어렵게 쌓은 인맥들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추천받은 안정적인 일자리도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 행동 중의 하나로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것이 있는데, 개인이 일단 어떤 행동 코스를 선택하면 이전에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그 행동을 정당화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콩코드'가 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로 1970년에 첫 비행을 시작하였는데 유류비 과다 및 운항 구간 한정으로 실용성이 낮아 개발 및 제작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결국 소음문제와 경제성이 대두돼서 운항을 중단하게 되었다.  

                                                                                                                < 콩코드,  출처 : 위키피디아 >

의류 생산업에서의 매몰비용의 오류는 기존에 오랜 기간 투자한 사업을 접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손해가 적을 거라는 생각과 시간이 지나면 업황이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온다. 하지만 대세를 막을 수 없듯이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특히나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큰 물살에 휩쓸리기 더욱 쉽다.


현재 H 대리는 교육기관에 몸담고 있고 뒤늦게 결혼해서 가정도 일구었다. 그와 함께했던 동업자들은 뒤늦게나마 사업을 접고 한국에 들어와 있다. 가끔씩 갖는 술자리에서 그때 만약 한국행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결혼도 못하고 중국 공장을 배회하고 있을 거라고 농담 삼아 얘기한다. 


업을 바꾼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동안 해왔던 일과 전혀 무관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개인이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듯이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해오던 업에서 떠나야 할 상황은 자의건 타의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러한 결정은 옳고 그름이나 의지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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