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이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개인적인 이야기

by 난나

그래, 이직하자

나는 국내 4년제를 군대 빼고 휴학 한번 없이 졸업했다. 여러 사정으로, 일찌감치 실무 전선에 뛰어들어 대학생 때부터 인턴/시간제/프리랜서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이 때문에 어학연수도 교환학생도 관심이 없었고, 차라리 빨리 제대로 된 곳에 취직하여 돈을 벌고 싶었다. 학생 때 했던 기업 서포터 활동으로 연이 닿아 외국계 IT 기업에서 인턴을 시작하였고, 이후 국내 대기업 신입 공채로 본격적인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회사의 분사와 이에 따른 강제 전적 이동 때문이었다. 신입 공채로 입사한 지 언 8년, 그 사이 회사는 나의 동의 없이 (물론 서류상, 절차상 동의는 받았지만) 나를 3번이나 다른 회사로 이직시켰다.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신규사업을, 그룹사 돌아가며 이 대표 저 대표에게 맡겨보며 될 때까지 돌려보려는 의도 같았다. 그리고 그룹사에서 그 사업을 한 지 10년이 좀 넘던 해, 나의 경력 8년 차의 봄, 나는 회사에서 또 한 번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올해는 분사가 아니라, 완전히 사업을 밖에 매각한다더라. 어디 골방에서 그걸 위한 보고서를 쓰고 있다던데, 이제 이 사업도 끝인가 보다.



세상에,

나는 나름, 당시 해외에서 모셔온 빡빡한 전무님이 사내 면접 아주 빡세게 봐가며 꾸린 신사업 TF에 발탁된 최연소 직원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한 PM이란 타이틀 달고, 각자 자기 분야 하나씩 맡아서 제안해보는 자리여서 그 자리에 연차도 낮은 내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에 제법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회사가, 3번이나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사업부가 다른 계열사로 이동하는 덕분에) 이직 경력을 만들어 대더니, 이제는 아예 나가라고 한다고?


사실 2번째 강제 이직 순간부터 어느 정도 마음속에서 이별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날 책임져줄 거라는 기대 같은 건 첫 번째 강제 이직 때부터 호되게 데이며 배웠던 차였다. 나와 같이 강제 이직당한 선배들 중에는 유명 외국계 기업에 취업해 억대 연봉받으며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래 이왕 이직을 한다면 나도 연봉을 크게 올리거나, 하다못해 리더급 자리라도 제안받으며 이직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2-3년 전부터 이직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오고 있었던 데다가, 국내 기업으로의 이직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 회사에서 진행하는 캠퍼스 리쿠르팅이나 그룹 공채 면접관으로 자주 참석한 편인데, 이 과정에서 백 명은 훨씬 넘는 자기소개서 첨삭 경험도 있었고, 면접 관련 코칭을 해준 경험도 많았다. 특히, 여러 해 동안 신입 공채 전형의 자기소개서 심사관으로 참석하거나, 신입/경력직 면접에 실무 면접관으로 참석한 경험도 많았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국내 기업의 면접에는 매우 익숙했고, 면접 자리에서 나의 어떤 장점을 어필해야 할지도 감이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국내 회사에서는 몇 번 이직 제의나 최종 오퍼를 받아본 경험이 있던지라, 더 좋은 기회가 온다면 언제라도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국내 대기업에 나름 오래 근무한 경력을 통해,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은 크게 연봉이나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이나 스타트업으로 간다면 최소 팀장급으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외국계로 이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국내 기업의 오퍼는 마음에 드는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정나미 떨어진 나의 친정집을 떠나야겠다 마음먹고 있던 차에,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평소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외국계 기업 중 하나였다. 게다가, 지금까지 지원했던 '어딘가 나랑 묘하게 안 맞는 포지션'과는 다르게, 이 자리는 아무리 봐도 내 자리였다. 연락이 온 당일 저녁, 마음속 한편에 늘 품고 있던 영문 이력서를 꺼내, 약간의 현행화와 그 회사에 맞는 내용을 추렸다. 그리고 자정이 조금 넘은 새벽, 나는 바로 지원 의사를 밝혔다.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다. 면접 보러 가자고. 그렇게, 다른 시도와는 다르게 출발부터 자신이 있었던, 나의 이직이 시작되었다.


나는야 국내파 토종 한국인

나는 외국계 IT 회사에 총 4번을 지원했다. 처음으로 외국계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서 이력서를 내던 순간을 되돌아보면 하나같이 낯설고 어색했다. 지원서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HR 담당자로부터 날아온 면접 관련 영어 이메일부터, 자신의 캘린더 링크를 보내주면서 “당신이 편한 시간에 화상 인터뷰 요청을 달라”는 제안까지, 살면서 짧은 해외여행을 빼고는 해외 체류도 교환학생 경험도 없던 토종 한국인인 나에게는 외국계로 이직은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다행히 함께 일하던 선배들 중에 외국계로 먼저 이직에 성공한 사례들도 있었고, 그중에는 평소 개인적인 친분도 있던 분들이 있었던 덕분에 좋은 포지션이 생기면 추천을 받거나 준비 과정에서 여러 도움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외국계 회사들이 실적과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만큼, 매우 바빠서 겨우겨우 짬을 내어 조언해주는 선배들에게 더 자세한 조언이나 구체적인 가이드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누가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뽑지 않을 것 같았고, 추천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선배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염치가 없었다.


우선 두 번은 서류까지는 통과하였으나, 인터뷰 단계에서 탈락했다. 나머지 한 번은 최종 임원 면접까지 갔었지만, 회사에서 나보다 더 경력이 오래된 사람을 채용하고자 한다며 합격 오퍼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처음 두 번의 시도는 나에게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고, 세 번째 시도는 채용과정이 끝나고 나서 후회가 남지 않는, 나의 가치를 온전히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갖춰졌음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특히 몇 번에 걸친 영어 면접을 통해 울렁증 또한 점차 사라져 갔으며, 무엇보다 면접이 끝나고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로 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이전보다 많이 덜 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앞서 탈락한 두 번의 인터뷰는 영어에 대한 불안감 말고도, 한국말로 했어도 나의 가치를 잘 전달하지 못하고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던, 전반적으로 부족한 인터뷰였던 것 같다. 그래도 한 번씩 더 시도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졌고, 그 마지막 시도에서는 손에 잡힐듯한 감이 왔다. '이번엔 진짜 이직하겠구나.'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겠다. 너도 이직하라고-

나는 원체 친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걸 좋아한다. 한마디로 꼰대 취급받기 딱 좋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를 늘 의식하고 말을 아끼는 편이고, 요즘 말대로 '물어보기 전까지는' 이야기 안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내가 안 해본 일'은 절대 조언을 안 하는 편인데 (당연한 소리지만) 그래서 경력직 이직에 대해서, 특히 외국계 이직에 대해서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사실, 나는 옛날에 취업 블로그를 운영했다. 이력서 잘 쓰는 법에 대해서, 나를 호되게 가르치며 도움 주셨던 선배 한 분의 도움 덕분에 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 경험 살려 캠퍼스 리쿠르팅에서 수많은 후배들 이력서 봐주며 쌓은 경험이 공중분해되는 것이 싫었다. 거기에 하나 더, 매~번 물어보는 내용이 너무 똑같아서 일일이 같은 코칭 해주다가 앵무새 될 각이어서 블로그를 팠다. 그래도 한때, 제법 잘 되었지만, 생계가 바빠 자연스레 접었다. 그리고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 이상 도와줘야 할 신입 후배들은 생기지 않았고, '내가 이직해보고 나서 이야기해줄게-'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연차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때가 되었다. 외국계 이직 시도만 4번, 국내 기업에서 받은 오퍼나 경험까지 합치면 그래도 이제 제법 이야기할 거리가 생겼다. 거기다 맨땅에 헤딩해본 4번의 외국계 이직 시도는 드디어 결실까지 맺었다. 결국 내 이직에 성공했으니까.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회사를 고를 때 이상한 집착이 있는 편이다. 그건 내 첫 인턴 경험이 대한민국에서 컴퓨터 쓴다는 사람이면 모를 수가 없는 회사였기 때문인데,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바로 알 정도의 회사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나부터도 너무 좋아하고 세계적으로도 사랑받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이직에 결국 성공했다.


현재는 지금의 회사에 매우 만족하며 재직 중이며, 회사가 나에게 업무적으로 바라는 바와 내가 지향하는 바가 일치하는, 직장인으로서는 아주 큰 축복을 누리며 일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서도 근무 환경이 열악한 편은 아니었지만, 사무실 환경부터 복지, 그리고 최상의 업무 효율을 위해 지원되는 최신 IT 기기까지. 업무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출근길과 내 자리가 매우 만족스러운 날들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의 6월, COVID-19로 인한 전 직원 재택근무 권고가 내려져, 몇 주째 그리운 사무실 내 책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 특별한 이유가 생기거나, 더 좋고 매력적인 기회가 생기기 전까지, 나는 이 회사에 매우 만족하며 근무하게 될 것 같다.


주변에 일 잘하는 후배들 중에, 내가 좋은 기회를 소개할 때마다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특히 자신은 영어가 자신이 없다며 거절하거나, 어떻게 준비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느낌으로, 이 글을 작성해본다. 생각보다 어렵지만은 않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자세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 이유로, 이 브런치도 시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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