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의 장점
개인적인 경험 만으로는 모든 외국계 기업은 이렇다 라는 이야기를 하기는 분명 어려울 것이다. 우선 나는 외국계 기업에 약 2년 정도 근무했고, 사회 초년생 때 약 3개월 정도 인턴으로 근무해본 경험이 있다.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기 전까지는 대기업에서 약 8년을 일했고, 그전에 스타트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회사에서도 짧지만 몇 개월 정도 근무해본 경험이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느낀 외국계 기업의 장단점을 이야기 한다면, 분명 대표성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적기 위해 회사 동료나 이전 직장 선후배들 중에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거나,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대한 보편적이고 공통된 부분들만 추렸다. 다만, 미리 이야기 해두고 싶은은 점은, 외국계 회사와 국내 기업의 단점만을 쏙쏙 뽑아 '헬적화' 된 기업도 있을 수 있는 만큼 모든 일은 회사 by 회사, 사람 by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줄로 이 글을 미리 요약하자면, 그래도 나는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들은 보통 처우가 좋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연봉(Base salary)이 높고, 연봉 협상에서 국내 대기업보다 높은 인상률을 제공한다. 또한 근무 환경이나 복지가 국내 기업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국계 기업의 인력 구성에 있다. 국내 기업보다 성과 지향적이며, 소위 직무에 대한 '오너십' 바탕으로 각자 개인이 맡은 바 역할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 문화이다 보니 특정 직무에 대해서 완결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좋은 인력 위주로 신중하게 채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 채용할 때마다 본사 임원 면접과, 본사 HR의 컨펌까지 받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기는 등 물리적으로 시간도 오래 걸린다. 여기에 지사에서 신규로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이유, 즉 "TO"를 늘리기 위한 설득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직원 한 명을 늘리기 위한 비용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사람을 한 번 데려올 때 좋은 조건으로 데려와서, 오래 데리고 있어야 한다. 최소 한 명의 직원을 채용하는데 1-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다 보니, 사람이 한번 들어오면 못해도 3년 정도는 재직을 해줘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이렇다 보니, 매년 정부의 눈치를 보며 의무적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국내 기업들보다는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직원의 만족'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채용이 결정된 상황에서는 이미 이 사람의 역량이 검증된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보다 높은 연봉 테이블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번 채용한 직원을 오래 다니게 하기 위해 연봉협상 또한 국내 대기업보다 조건이 좋은 편이다. (물론 그만큼, 외국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국내 기업보다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내가 맡은 업무에 자신이 있고,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아본 직원일수록, 외국계 회사로 한시라도 빨리 이직하면 좋다. 내가 대기업에 8년 다니면서 느낀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늘 '일하는 사람만 일하는 문화'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14년이었고, 나는 약 7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회사는 요즘 트렌드에 맞춘다며 약 3-4년 전에 직급체계를 모두 없앤 상황이었고, 덕분에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사용하는 직급은 없었지만 대충 대리에서 과장급 정도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이 정도 연차가 되면 일에 관심이 없고 회사에서 나쁜 평가를 받지 않는 이상, 작은 일 한두 가지라도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하여 업무를 진행하도록 요구받거나, 그런 역량이 있는지를 시험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슬슬 회사에서 '누가 일을 안 하고, 누가 일을 다 하는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대기업에 조금만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특히 노동조합의 힘이 강한 회사일 경우에는 더더욱 '적체'가 심하다. 아무리 성과가 낮고, 근무 태도가 나쁘다고 하여도 회사가 흑자를 보고 있는 이상 국내 기업에서 사람을 해고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사람을 내보내려는 시도를 어설프게 했다가는, 회사가 사람을 도구 취급한다는 이야기부터,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노동조합이 강하게 들고일어나기 때문에 대기업은 많은 경우 성과가 낮은 직원들도 큰 걱정 없이 회사를 다니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나의 상사 중에는, 별명이 '스루패스'인 부장도 있었다. 그분은 나와 사수-부사수로 짝을 이뤄 일하는 약 6개월 정도, 모든 이메일을 나에게 자동 전달(Auto Forward) 되도록 설정해 두고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에게 도착하는 매우 개인적인 자료 (예를 들면 그분의 인사자료라든가) 까지도 나에게 바로 전달되었기 때문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서의 승진 차례가 돌아왔을 때 HR에서는 나에게 그분을 부서장으로 승진시키려고 하는데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물어왔다. 비교적 젊었던 대리 시절의 경험이었지만, 정말 국내 대기업은 마음만 먹으면 끝도 없이 놀면서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그때 그분은 절대 승진시키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고, 이듬해 내가 신사업 TF로 발령이 나며 그분과는 연락이 끊겼다. 저 사건 이후 약 2년 뒤 그분은 드디어 부서장 승진을 했고,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 외국계 회사는 이런 인력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여기에는 복합적으로 몇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우선 외국계 회사는 인원이 늘 적다. 대기업의 장점은 한 사람이 할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한다는 점이다. 책임이 분산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프리라이더가 숨기 좋다는 부작용을 가져오지만, 사실 대기업이 특정 업무를 이중화 삼중화 하여 인력을 배치하는 이유는 '언제라도 업무가 인력의 변동에 영향받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강하다. 즉, 갑작스러운 인력 공백이 생기거나, 휴가나 병가, 혹은 특정 인력이 갑작스럽게 무단결근을 한다고 하더라도 대기업에선 매우 매끄럽게 업무가 돌아간다. 하지만 외국계는 다르다. 보통 한 사람이 맡은 업무는 그 사람 외에는 중복되는 인력이 없다. 회사에 인력 자체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이 둘 이상 있다는 것은 비용의 낭비라 생각하는 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프리라이더가 숨을 공간이 없다. 내가 일을 안 하면 일에 그대로 구멍이 나게 되고, 누가 보아도 이 구멍의 원인이 누구인지 매우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곁들여 외국계는 비교적 해고가 용이하다. 보통 규모가 작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가 많고, 이렇다 보니 해고 등이 발생할 때 회사와 개인의 쓸쓸한 전투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이전에 인턴으로 몸을 담았던 회사에서는 반쯤 농담이지만 '출근길에 ID카드가 찍히지 않아 Security에 연락하였더니, 노란 박스를 하나 들고 와서 개인 짐을 다 담으라고 했다더라.'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이는 해외 오피스가 나오는 미드나 영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퇴사 광경이다. 실제로 이 회사에 와서 겪어보니, 회사마다 다르기도 하고 그 정도로 '당일 해고'를 통보하는 일은 겪어보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업무를 같이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도는 분들은 어느새 소리 소문 없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분들이 해고를 당한 것인지, 혹은 더 이상 회사에 본인이 기여할 부분이 없다 판단하여 회사를 그만두었는지는 HR만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회사에는 늘 자신의 분야에서는 자신의 몫을 1인분 이상 해내는 사람들만 남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반증으로, 함께 일해보면 정말 다른 분야의 업무를 하는 사람이 보아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
마지막으로 외국계는 상호 피드백이 매우 잦다. 이는 특히 영미권에 본사가 있는 경우 두드러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 문화에서는 상사에 대한 평가나 부서장에 대한 평가를 하라고 할 때 안 좋은 점을 솔직하게 적기도 어렵고, 또 그런 내용을 적었다가 되려 불이익이 나에게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외국계의 경우 그러한 걱정이 없다. 상사, 부서장, 소속 오피스에 대한 평가부터 나와 함께 업무를 진행하는 옆 동료에 대한 부분까지,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은 보충이 필요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함께 일하기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매우 솔직하게 주고받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영미권 회사에서는 매우 흔한 Peer feedback (상호평가) 문화이며, 자연스레 지사인 한국 오피스 또한 이 문화를 따르게 된다. 즉,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 늘 드러나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진행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는 매우 좋은 기업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이유로 보통 리더십 (임원/조직장) 들이 일을 매우 잘한다. 스타일의 차이나, 개인의 성격의 차이 (누구는 불 같고, 누구는 차갑게 냉정하고 등)는 있을 수 있어도 보통 리더십이 가장 많이 일을 하고,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임원을 가르치러 보고를 들어간 것인지, 임원에게 의사결정을 받으러 들어간 것인지 헷갈리는 국내 기업과 같은 '일은 하나도 모르지만 회장님/사장님 낙하산 타고 내려온' 본부장이라든가, 어쩌다 임원 자리가 순환보직이어서 사업부서를 맡으러 온 인사팀 출신의 본부장 같은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창 일 많이 하는 연차의 후배들에게, 또 일 잘하는 친한 동생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외국계로 이직하라고 조언한다. 국내 대기업에서는 일을 잘하는 직원에게만 일을 몰아주고, 평가 시즌에는 연차 쌓인 순으로 승진하고, 아무리 높은 성과와 함께 좋은 평가를 받아도 '형평성'을 이유로 남들보다 1~2% 높은 연봉 상승을 할 수 있었다면, 외국계 기업은 어렵게 뽑은 일 잘하는 직원일수록 채용 때뿐만 아니라 정기 인사에서도 파격적인 처우를 해주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다. 내 자식 대학교 입학 때까지 바위에 붙은 미역처럼 착 붙어 회사를 가늘고 길게 다니겠다는 전략도 누군가에겐 유효하고, 한 회사에서 엉덩이 오래 붙이고 이슈 없이 살아남는 일도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일 잘한다는 평가를 자주 들어봤고, 눈치 보며 일하기보다는 “내 성과 내가 챙겨갔으면 한다”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알아보자. 나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고, 나와 합이 맞는 회사/포지션을 잘 찾아내기만 한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좋은 대우와 인정을 받으며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 시간에는 외국계 기업의 다른 장점들에 대하여 이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