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영어를 겁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 1

토종 한국인이 외국계 기업에서 영어로 일하기까지

by 난나

처음 구글의 채용 담당자와 Screening call을 했던 때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직무에 대해서도 깊은 공부가 되어 있지 않았고 지금보다 영어 실력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무얼 묻는 것인지 들리지 않고,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던 그때의 심정. 당황스럽고,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던 기억. 당연한 이야기지만, 24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나에게 '더 이상 이 채용을 진행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회신이 왔고, 나는 그때부터 한번 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많았던 좋은 기회들을 제법 놓치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엄청 많은 '노력'의 차이가 있던 것 같지는 않다.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고 약 2년, 주 1-2회 정도의 화상영어 수업과 한 달에 4-5번 정도 진행하는 화상회의, 그리고 매일 쓰는 영어 이메일이 전부다. 어찌 보면 '감을 잃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고, 어디 가서 '저 영어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것 한 가지 같다.


그래서, 영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처음 영어에 겁을 먹게 된 순간

지인의 추천으로 구글 코리아에 서류를 넣게 되었다. 이력서를 적는데 엄청 공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이력서를 향한 내 마음이 통했는지, 원래 지인 추천은 한국이고 외국계고 일단 한 단계 먹고 들어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면접은 보기로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문 이력서가 통과된 순간,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내 영어 먹히는구나?


영어를 기존에도 쓰긴 썼는데,

영어로 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 3년 차에 '글로벌 사업부서'로 발령이 났고, 미국에 있는 지사와 협업하는 일부터 싱가포르에 업무 목적 출장까지, 그래도 막 '영어로는 절대 일 못합니다.'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 토익 스피킹 Lv 7. 이 있어야 대기업 공채 서류를 통과할 수 있었고, 그래도 '기본'은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출장 갈 일이나 업무 맡을 일이 있을 때 겁먹으며 뒤로 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몰랐을까. 그때는 주니어고, '엄밀히는' 내가 늘 클라이언트이거나 본사 담당자, 소위, '갑의 포지션'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영어를 나 혼자서 온전히 담당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싱가포르 출장에는 우리 회사와 협업하는 글로벌 회사 (편의상 A사)의 초청으로 방문한 만큼, 그 A사의 한국지사에서 '실시간 통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업무를 도와줄 담당자가 함께 갔었다. 즉, 영어가 막히면 한국지사 직원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나중에 backup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우리 회사의 미국지사도 마찬가지. 우리 쪽에서도 영어 잘하는 팀장님이 함께 갔었고, 당시는 우리가 주로 '묻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리스닝' 중심의 영어였다. 심지어, 우리가 필요한 내용을 인터뷰하는 거라, 미안한데 녹음 좀 할게~라고 하고 대부분의 회의를 녹음했다. 몇몇은 Paid interview였던 만큼, 녹음이 필수였다.


회사 다녀본 사람은 알 거다. '온전히 나 혼자 이 일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동시에,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임을. 단지 그 차이였다. 영어로, 1 on 1, 나 외에 아무도 없고 오롯이 나를 위해, 내 일을 위해 내가 영어를 해야 했다. 그것이 달랐는데, 준비가 너무 안일했다.


망했구나, 이 인터뷰.

질문이 무슨 뜻인지 잘 안 들리는 것도 있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상대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다 들었다는 점이었다. 즉, 나는 상대방의 질문의 본질을 이해 못했다. '영어'라서 어려운 점 외에도, 인터뷰 자체를 말아먹었다. 심지어, 포지션에 대해서도 잘 설명을 못했다. 하나가 막히기 시작하니, 파국 지세로 뒤의 모든 질문들까지 다 꼬였다. 약 1시간을 생각했던 인터뷰는 30분 만에 끝이 났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영문 이력서 통과 이후, 내 인생 첫 외국인과 영어 인터뷰는 장렬하게 탈락으로 마무리되었다.


어학연수, 왜 안 갔을까.

영어 인터뷰에 떨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어학연수를 좀 다녀올걸. 왜 안 갔을까.


학창 시절에, 외국 잠깐 나갔다 온다고 인생에 큰 변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루빨리 돈을 버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해외 나가는 게' 싫었다. 그냥 집이 좋았고, 익숙한 환경이 좋았다. 해외여행이나 다를 바 없는 게 어학연수 아닐까, 교환학생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인생 첫 영어 인터뷰를 떨어지고 나니, 엄청난 후회가 몰려왔다.


나의 채용 담당자에게서, 마지막을 알리는 이메일이 왔다.


We decided not to proceed with your application at this time


그리고, 나는 이때 이후로, 외국계에서 제안이 오면 일단 걸렀다.



이력서가 좋은데요?

다시 외국계 기업에 지원하게 된 것은, 처참하게 인터뷰를 말아먹은 지 약 1년이 지난 후였다. 이전에 내가 잠깐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회사였다. 한국지사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알고, 무엇보다 나를 추천해준 분이 해당 부서의 부서장이었다. 영어를 엄청 잘할 필요는 없다- 라는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지원을 하게 되었다. 최종 인터뷰 정도는, 한국에 근무 중인 APAC 담당 임원과 영어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 대부분의 인터뷰를 한국말로 진행할 예정이라는 점에 안심이 되어, '그래 초장부터 떨어질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앞선 면접들은 모두 잘 통과가 되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바도 알고, 내가 회사에 줄 수 있는 부분도 명확했다. 그 점이 일치한다고 판단한 분이 추천을 한 것이라, 면접 중에 이상한 춤만 안 추면 떨어질 리는 없었다. 무엇보다 인턴 때 나의 평판이 좋았다. 여러모로, 유리한 환경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인터뷰에 임해서였을까, 다행히 최종 인터뷰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었다.


내 생에 두 번째 영어 인터뷰였다.


포지션에 대한 이해, 내가 생각하는 회사에서 나에게 바라는 점,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이러한 부분들을 인터뷰에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 두 번째 인터뷰인 만큼, 어떤 의미로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많이 알고 있어서였을까.


APAC 담당 임원과 진행한 영문 인터뷰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인터뷰 말미에, 더 질문이 없냐는 이야기가 나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태어나서 영어로 인터뷰를 본 경험이 두 번 밖에 없다. 오늘의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업계 선배 입장에서 오늘 인터뷰에 대해서 나에게 피드백을 해줄 부분이 있을까요?


돌아온 이야기는, 나에게 여러 가지로 큰 충격을 주었다. 정확한 모든 문맥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력서를 정말 잘 썼다. 이력도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질문에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역량에 대해서, 배경이나 이유를 들어 잘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전반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생각한다.


사실 첫 번째 인터뷰와 달랐던 점? 준비가 많이 되었던 점도 있었지만, 영어가 본질이 아니었다. 포지션에 대한 공부, 즉 JD를 정말 많이 보고 갔고, 무엇보다 내 생각에도 그 포지션과 내가 잘 맞았다. 그 점이, 결국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실패의 원인을 너무 '영어'에만 두고 있었다.


중요한 건 단순히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할 수 있는지가 아니었다. '영어'로 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가. 상대방이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가. 유창함이 아니라 '의미가 통하는가.'였다.


즉,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영어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점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더 이상 외국계라고 겁내지 않기로 하였다.



글이 너무 길어져,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면서 '영어'가 실제로 얼마나 필요한지.

매거진의 이전글혹시, 이 회사로 이직 어떠세요?